故鄕이야기 70

선친의 생애(先親 生涯)

선친(先親)의 성(姓)은 류(柳)이고, 관향(貫鄕)은 황해도 문화(黃海道 文化)요, 명(名)은 휘 지섭(志燮)이시니, 시조 대승공(始祖 大丞公) 휘 차달(車達)의 33世 孫이시다. 1929(己巳)년 8월 7일, 할아버지 휘 창열(昌烈)과 할머니 흥양이씨(興陽李氏) 사이에, 충청남도 대전군 유성면 봉명리 272번지 현, 대전광역시 유성구 도안동로 523에서 청빈(淸貧)한 양반가 6대 장손 무녀독남(無女獨男)으로 태어나셨다. 선계(先系)를 잠시 살펴보면 중문지후사공파조(中門祗候使公派祖)이신 휘 인수(仁修)는 22대조이시고, 필선공(弼善公) 휘 기문(起門)은 12대조이시며, 8대조 휘 시채(始采), 시명(始明)의 형제와 7대조 휘 행직(行直). 6대조 휘 제태(齊泰), 제형(齊衡), 제화(齊華) 3형제 그리고..

故鄕이야기 2015.03.21

이정승 묘(李政丞 墓)

이정승 묘(李政丞 墓) 이정승 묘 근경 봉분 뒷편에 금병산이 살짝 보인다. 사진자료(경주이씨 익재공후 판윤공파 카페) 우리 마을 뒷동산에 왕릉만 한 묘가 있었다. 묘가 얼마나 큰지 옆으로 100여 보가 되었고, 앞, 뒤로는 50여 보가 넘었다. 언제부터 있었는지 모르나 인근 마을 사람들은 이정승 묘라고 불렀으며 자랑거리였다. 그 묘는 마을에서 가까운 야트막한 뒷동산에 있어서 마을 사람들에게 매우 친근했다. 이른 봄, 할미꽃이 피어날 때 꽃을 좋아하는 소녀들에게 꽃을 안겨주었고, 아지랑이 피어나는 봄부터 악동들에게 뛰어놀 수 있는 운동장이요, 놀이터인 셈이었다. 낮은 산등성이 마루에 있어서 어른들에게는 지게를 지고 가다 쉬어가는 쉼터였고, 가까운 밭에서 추수한 농작물을 건조하는 잔디밭이었다. 30여 년이 ..

故鄕이야기 2015.02.17

내 고향 숯골

1980년, 동둑에서 바라본 금병산 명산, 계룡의 주봉 천왕봉(845m)에서 동북 방향으로 능선을 따라가다 보면 장군봉(503m)에 이르고, 또다시 동쪽으로 갑하산(469m)에 이르러, 북쪽 우산봉을 거쳐 동북 방향으로 다다른 곳이 내 고향 금병산(368m)이다. 일찍이 금평산(錦平山)으로 부르던 이 산을, 조선 이태조(이성계)가 비단 병풍 같이 아름답다 하여 금병산(錦屛山)으로 고쳐 불렀다. 봄에는 언니, 누나 얼굴만큼 화사한 진달래꽃이 등성이마다 피어나는 산. 여름이면 높푸른 녹음이 아버지 닮아 부지런히 숲을 이루는 산. 가을이면 마음 넉넉한 할머니처럼 숯골 사람들에게 모든 것을 내어주던 산. 눈보라 치는 추운 겨울에는 엄마의 따스한 품처럼 북풍을 막아 주었던 산이 금병산이다. 근원이 없는 우주 만물..

故鄕이야기 2014.10.06

맹형옥선생님과 보고픈 친구들

내가 중학교 진학할 때에는 입학시험 제도가 없어지기 시작한 때이다. 즉, 지원한 중학교에 입학시험을 거쳐 합격한 학생이 그 중학교에 입학하는 것이 아니고, 일명 뺑뺑이로 불리는 추첨으로 중학교에 배정받아 입학하는 제도가 시작된 시기에 진학하게 되었다. 하지만 관내의 배정 중학교가 하나뿐이기 때문에 초등학교 5, 6학년 때 여 타 한 초등학교로 전학 가는 것이 유행이라, 한 반의 20% 정도는 좋은 중학교에 배정받기 위해서 전학을 갔다. 왜냐하면, 전학하지 않은 초등학생들 배정 중학교는 학교법인 남성학원이 운영하는 중학교로 역사나 재정이 매우 열악해서 가르치는 선생님이나 교정의 시설이 학업에 좋지 않다는 평이었다. 자의든 타의든 금성초등학교에서 30여 명, 탄동초등학교에서 30여 명이 1972년 3월 충남..

故鄕이야기 2014.02.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