故鄕이야기 70

초등학교 동창들

♡초등학교 동창들♡  사람은 인연 속에 살아간다.  나 또한 육십 중반을 넘게 살아오면서 많은 사람들과 만남과 헤어짐을 반복하며 살아가고 있다.지금은 얼굴도, 이름도 가물가물 하고 기억도 잊힌 사람들이 많다.  그중 죽을 때까지 호형호제하며 살 것 같았던 지인도, 삶의 기로에서 허덕이다 보니 어디서 어떻게 사는지 알 수 없다. 그렇다고 뜬금없이 안부 전화라도 하고 싶어도 연락할 길이 없고, 설상 연락처가 있어도 선뜻 용기가 나지 않는다.  하지만 초등학교 친구는 다르다.  초등학교를 졸업한 지 꼭 52년이 지났고, 동창회라는 이름으로 다시 만난 지 19년이 넘었다.그동안 동창생들을 다 만난 것은 아니지만, 반세기 동안 살아온 환경이 다르고 지역이 달라도 어색하지 않다. 긴 방학이 끝나고 개학날 만난 느낌..

故鄕이야기 2024.10.17

장마철 추억

어리 보리한 농부 아닌 농부가 있다. 그 게으른 농부는 장마철에 때 늦은 장마 설거지를 한다. 낮시간 뭐가 바빳는지 못하고 늦은 시간에 허겁지겁 끝내고, 먹다 남은 아메리카노 한 모금 넘기니, 들리지 않았던 자연 소리에 옛 추억이 주마등처럼 훑고 지나간다.그러니까, 오십여 년 전, 아니 정확히 오십오 년 전 오늘 같은 날, 초등학교 시절.며칠째 장맛비가 오락가락하는 오후.얼기미와 주전자를 들고 평소 송사리가 모여 살았던 논 웅덩이로 달려갔다.흙탕물로 변해버린 웅덩이에서 얼마 전 보았던 송사리를 잡으려고 얼기미를 수 차래 떨쳐 보았지만 허사였다.오기인지 욕심인지 논 수로가 모이는 도랑을 찾아 대어를 만난 어부처럼 "첨벙" 들어가는데, 미끈덕! 넘어지고 말았다.아뿔싸, 한 손에 들고 있던 주전자가 저 앞에 ..

故鄕이야기 2024.07.06

낙엽

아침 산책길, 그다지 높지 않은 구불구불한 산길을 매일같이 다람쥐 쳇바퀴 돌듯 오르락내리락하는 옆으로, 수북히 쌓인 낙엽을 보니 불현듯 옛생각에 졌는다. 나뭇잎은 이른 봄부터 피어나 한여름에 햇빛을 바라보며 나무 성장을 돕고, 긴 장마와 태풍을 견뎌 가을에는 열매를 여물게 한다. 모진 나뭇잎도 요즘같은 계절에는 모든 욕심 다 버리고 땅 위에 떨군다. 지금과 달리 농촌에서는 취사나 난방용으로 땔감을 농산 부산물이나 낙엽. 화목을 주로 썼다. 그중 낙엽은 불쏘시개로 없어서는 안 될 땔감으로 사용했다. 청소년 시기가 막 지난 시절, 마을 뒤 민둥산에는 숲도 없거니와 그나마 있는 나무 밑에는 갈퀴 자국만 있을 뿐 땔감용 낙엽 구하기가 어려웠다. 하는 수 없이 몸에 베지 않은 지게를 지고 땔감을 찾아 마을 앞 먼..

故鄕이야기 2022.12.03

내 얼굴

누구나 아침이면 늘 하는 세수.나 또한 밤송이처럼 자란 수염까지 깍고, 수건으로 이마부터 물기를 닦아 내릴 때 거울에 비친 내 얼굴은 싱그럽다.그렇다고 내가 청춘도 아니고, 미남으 더더욱 아니다. 나는 지금까지 누구에게도 내 얼굴이 잘 생겼다거나,아니면 멋있다는 이야기를 들어보지 못했다.하물며 고슴도치도 제 새끼는 이쁘다 던데,나를 낳아 길러주신 어머니에게도 듣지 못했다.그래서 평소 거울보기 달갑지 않고 사진 찍기를 꺼려한다. 그러나 오늘은 다르다. 하늘의 뜻을 안다는 지천명(知天命)이 지난 지 오래되었고,뜯는 대로 이해할 수 있다는 이순(耳順)의 나이도 지났건만,오늘따라 경망스럽게 금방 찬물로 세수한 스믈 한 살 청신한 얼굴 같다.아니, 설렘 가득한 소년 같다. 내 고향 느러리 마을에 열네 명의 친구들..

故鄕이야기 2022.09.30

날궂이 하던 날

여름 비인지 가을 비인지 모를 비가 하루 종일 오락가락하고 있다. 어린 시절 오늘 같은 날, 날궂이 하기 딱 좋은 날이다. 비가 그치는 틈을 타서 얼개미(얼기미), 소쿠리와 주전자를 하나씩 들고 벼이삭이 막 패기 시작하는 논, 물꼬로 달려갔다. 윗 논에서 내려오는 흙탕물로 인해서 인기척을 모를 때, 수풀 쪽에 얼개미를 대고 반대쪽에서 발장구를 치며 몰아가서 얼개미를 빠르게 들어 올리면, 빗물에 좋아라 하던 송사리 미꾸라지 붕어 등이 잡히곤 했다. 물꼬를 서너 군대 찾아다니며 고기잡이에 빠지다 보면 주전자에 물 반 고기 반이 차 있었고, 걷어 올린 잠방이나 까무잡잡한 런닝구가 흙탕물과 빗물에 졌은 것은 그때서야 알았다. 우비나 우산이 변변히 없던 시절. 오늘 같은 비를 맞으며 물고기 잡이를 하고 난 후에 ..

故鄕이야기 2022.08.31

봉숭아 꽃물

초등학교 학사 일정표를 보니 긴긴 여름방학이 끝나가는 시기이다. 이만 때 난처했던 나의 초등학교 시절이 아스라이 떠오른다. 고향집 뒤켠 장꽝(장독대)에 이러저러한 단지. 항아리가 있었고, 그 옆으로 조그마한 꽃밭에 채송화. 나리꽃. 꽈리 꽃이 있고, 장꽝 쪽에는 봉숭아 붉은 꽃이 피어있었다. 언제부터 인지는 모르지만, 매년 여름방학이면 어머니는 봉숭아 꽃과 잎 그리고 백반을 돌절구에 빠아서 누나들 손톱에 물을 들여 주셨다. 그때마다 나는 특별히 이쁘다는 느낌이나 관심이 없었다. 하지만 어느 해인가(3, 4학년쯤) 물들이는 누나들이 꼬드겨서 내 손톱 약지와 새끼손가락에도 봉숭아 꽃잎을 싼 비닐을 실로 묶고 하루 밤을 지냈다. 아침에 비닐을 벗기니 손가락까지 벌겋게 물들 봉숭아 물, 아뿔싸! 여자들의 전유물..

故鄕이야기 2022.08.16

더위를 날리는 등목

"에이 춰!" "아이 춰!" "아~ 쉬원타!" 조그만 농장에 장마 때 무성하게 자란 풀을 한바탕 베고 나니 온몸이 땀범벅이다. 이내, 아내는 등목을 해주겠다고 자청한다. 웃통을 벗고 지하 30m에서 올라오는 물줄기에 등을 맡기니 소스라칠 정도로 물이 차갑다. 얼얼한 등줄기를 타올로 닦으니 옛 생각이 밀려온다. 초등학교 시절 이만 때, 어머니는 점심 준비를 해 놓고, 들녘에서 오신 아버지께 등목을 권유하신다. 마을 공동 우물에서 두레박으로 퍼 올린 물을 더위에 지치신 아버지 등에 연신 뿌리신다. 아버지는 "아이 차! 아이 차! 그만 그만" 하시면서도 등을 대주신다. 서너 두레박을 비우신 뒤, 삼베 수건으로 물기를 닦으실 때는 "어~ 시원하다." 하신다. 요즘은 샤워 시설이나 더위 피할 수 있는 방법이 다양..

故鄕이야기 2022.07.28

나의 중학생활 이야기 제5편

아침에 야채샐러드에 썰어 놓은 딸기 반 쪽을 베어 물으니 딸기 향과 함께 옛 추억이 묻어난다. 지금이야 야채. 과일을 계절에 관계없이 먹을 수 있지만, 오십여 년 전에는 제 철에만 맛볼 수 있었다. 오십 년 전, 중학교 1학년. 1학기 중간고사가 끝난 어느 토요일. 탄동국민학교에서 입학한 친구들과 금성국민학교에서 입학한 친구들이 중학교 생활을 두 달 정도 하면서 약간은 서먹서먹한 사이가 남아 있을 무렵, 관평리 동화울로 친구 따라 놀러 가기로 했다. 관평리는 행정구역이 옛 구즉면이기 때문에 관평리가 있다는 것을 두 달 전에 알았으니, 동화울 마을이 낯설기는 더할 나위 없었다. 아무튼 친구들 셋이 관평 친구들에 이끌려 신영이네 집에서 저녁 식사를 하고, 밤이 되어 어설픈 횃불을 들고 관평천 하구, 갑천변으..

故鄕이야기 2022.05.26

마음에 고향, 금병산

지난 연말,생애 네 번째 보금자리를 옮기고 습관 하나가 생겼다. 아침 출근길이면 어김없이 바라보는 산, 금병산이다.금병산은 우리나라 10대 명산도 아니고, 100대 명산도 아니다. 그럼에도 출근길 300m 구간 정 좌측, 10km 떨어진 곳에 금병산 12봉이 보이면, 나는 마력처럼 고개를 돌려 짧은 시간 바라보며 액셀 페달을 밟는다.오늘따라 바람 한점 없이 금병산이 해맑다. 하지만 항상 해맑은 것은 아니다.흰 눈이 수북이 온 아침에는 흰 병풍처럼 보이고, 안개 자욱한 날에는 안개에 묻혀 못 볼 때도 있다. 언젠가는 찻장에 흐르는 봄비 때문에 수채화로 보이기도 한다.어린 시절,사계절 우리 곁에 있었던 산.봄에는 언니, 누나 얼굴만큼 화사한 진달래 꽃이 등성이마다 피어나는 산, 여름이면 높푸른 녹음이 아버지..

故鄕이야기 2022.05.17

금성초등학교 졸업대장

지난 금요일, 모교 총동문회 사무소 개소식에 다녀왔다. 총동문회 사무국에서 모교 1회부터 33회까지 졸업 연번이 기록된 졸업대장을 접했다. 모교는 1949년 개교하여 1950년 1회 졸업생을 시작으로 2022년 73회 8,835명을 배출한 명문 초등학교다. 역사 깊은 모교 졸업대장은 1회부터 10회까지는 한자 필사본으로 되어있고, 11회부터는 한글 워드 복사본으로 되어있다. 연번으로 되어있는 모교 졸업대장 1호 동문은 누구일까? 옛 지명이 자운리(느러리)에 사셨던 이철하(李徹河) 동문이고 이상인(23회) 동문의 아버지가 되신다. 또 대장에는 없지만 73회 정현율 동문이 8,835번째 졸업생이다. 이처럼 소중한 졸업대장을 모교에서 연람 하고 복사할 수 있는 것은 다행이다. 지금은 폐교된 모교의 본교 탄동초..

故鄕이야기 2022.05.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