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교 학사 일정표를 보니 긴긴 여름방학이 끝나가는 시기이다.
이만 때 난처했던 나의 초등학교 시절이 아스라이 떠오른다.
고향집 뒤켠 장꽝(장독대)에 이러저러한 단지. 항아리가 있었고,
그 옆으로 조그마한 꽃밭에 채송화. 나리꽃. 꽈리 꽃이 있고,
장꽝 쪽에는 봉숭아 붉은 꽃이 피어있었다.
언제부터 인지는 모르지만, 매년 여름방학이면 어머니는 봉숭아 꽃과 잎 그리고 백반을
돌절구에 빠아서 누나들 손톱에 물을 들여 주셨다.
그때마다 나는 특별히 이쁘다는 느낌이나 관심이 없었다.
하지만 어느 해인가(3, 4학년쯤) 물들이는 누나들이 꼬드겨서
내 손톱 약지와 새끼손가락에도 봉숭아 꽃잎을 싼 비닐을 실로 묶고 하루 밤을 지냈다.
아침에 비닐을 벗기니 손가락까지 벌겋게 물들 봉숭아 물,
아뿔싸!
여자들의 전유물인 봉숭아 물을 내 손톱에도 들어져 있지 않는가.
하지만 방학이 10여 일 남았고,
한마을 동무들은 내 사정 네 사정 다아는 처지라 큰 걱정은 없이 여름방학이 지나갔다.
오늘처럼 개학 전 날,
아직도 봉숭아 물이 남아있는 내 손톱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학용품 칼로 긁어도 보았지만 손톱 속까지 물든 봉숭아 물은 지워지지 않았다.
학교 친구들이 보면 얼마나 놀릴까?
누나들 원망도 하고, 후회도 했던 기억이 오늘따라 주마등처럼 훑고 지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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