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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숭아 꽃물

초등학교 학사 일정표를 보니 긴긴 여름방학이 끝나가는 시기이다. 이만 때 난처했던 나의 초등학교 시절이 아스라이 떠오른다. 고향집 뒤켠 장꽝(장독대)에 이러저러한 단지. 항아리가 있었고, 그 옆으로 조그마한 꽃밭에 채송화. 나리꽃. 꽈리 꽃이 있고, 장꽝 쪽에는 봉숭아 붉은 꽃이 피어있었다. 언제부터 인지는 모르지만, 매년 여름방학이면 어머니는 봉숭아 꽃과 잎 그리고 백반을 돌절구에 빠아서 누나들 손톱에 물을 들여 주셨다. 그때마다 나는 특별히 이쁘다는 느낌이나 관심이 없었다. 하지만 어느 해인가(3, 4학년쯤) 물들이는 누나들이 꼬드겨서 내 손톱 약지와 새끼손가락에도 봉숭아 꽃잎을 싼 비닐을 실로 묶고 하루 밤을 지냈다. 아침에 비닐을 벗기니 손가락까지 벌겋게 물들 봉숭아 물, 아뿔싸! 여자들의 전유물..

故鄕이야기 2022.08.16

[문화류씨 보감] 충효열가

하정공파, 영암. 모산 죽봉공종중(竹峯公宗中) 하정공 5세손 모강공 용공(茅薑公 用恭)이처음 입향한 종가이다. 성로(星老)의 계자 치영(致榮)은 총효열가의 종손으로 효성과 우애가 독실하여 5형제가 한집안에 살며 의복마저 함께 입었다. 또 덕성이 혼화(渾和)하여 종들께 이르기를 "우리 논에 날아드는 새는 쫓지 마라, 쫓으면 가난한 집 논으로 날아갈 것이다." 하고 만일 공의 전답에 곡식을 베어가는 사람이 있어도 부모 공양을 위해서라면 이를 꾸짖지 아니했다. 하루는 섣달 그믐날 밤 장형 댁을 다녀오다 문전에 이르니 창고에서 벼 한가마를 몰래 가져가는 것을 보고 길을 비켜주며 "땅이 험악하니 조심히 가라" 당부하였다. 또 공의 집에는 매일같이 많은 과객이 있었는데 하루는 내실을 다녀오는 사이에 어느 과객이 공..

카테고리 없음 2022.08.07

더위를 날리는 등목

"에이 춰!" "아이 춰!" "아~ 쉬원타!" 조그만 농장에 장마 때 무성하게 자란 풀을 한바탕 베고 나니 온몸이 땀범벅이다. 이내, 아내는 등목을 해주겠다고 자청한다. 웃통을 벗고 지하 30m에서 올라오는 물줄기에 등을 맡기니 소스라칠 정도로 물이 차갑다. 얼얼한 등줄기를 타올로 닦으니 옛 생각이 밀려온다. 초등학교 시절 이만 때, 어머니는 점심 준비를 해 놓고, 들녘에서 오신 아버지께 등목을 권유하신다. 마을 공동 우물에서 두레박으로 퍼 올린 물을 더위에 지치신 아버지 등에 연신 뿌리신다. 아버지는 "아이 차! 아이 차! 그만 그만" 하시면서도 등을 대주신다. 서너 두레박을 비우신 뒤, 삼베 수건으로 물기를 닦으실 때는 "어~ 시원하다." 하신다. 요즘은 샤워 시설이나 더위 피할 수 있는 방법이 다양..

故鄕이야기 2022.07.28

완벽한 배우자

결혼을 앞둔 남성이 어떤 여자와 결혼할까 고민했다. 그러다 '완벽한 배우자'가 아니라면 불행한 결혼 생활이 될 거라 판단했고, 그는 최고의 신부를 찾기 위해 여행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40년이란 시간이 지났지만 그는 여전히 결혼하지 못한 상태였다. 한 친구가 그에게 물었다. "자네는 그렇게 세상을 다 돌면서 찾아도 완벽한 배우자를 찾지 못했는가?" 그러자 남자는 한숨을 푹 쉬며 친구에게 대답했다. "사실 딱 한 번 그런 여성을 만났었네. 그런데 그녀는 '완벽한 남성'을 찾고 있었다네. 그래서 결혼이 이뤄지지 못했지." 퍼즐처럼 서로의 결핍을 채워가며 공존하는 게 부부가 아닌가 싶다. 지금의 곁을 지켜주는 배우자를 만난 건 완벽해서가 아닌 마음을 움직이게 한 그만의 장점 때문일 것이다. 세상에는 완벽한 반..

삶의 이야기 2022.07.23

욕심과 행복은 반비례

예전에는 책 속에서 읽었던 좋은 글을 온라인을 타고 손쉽게 접할 수 있는 시대에 살고 있다. 그중 짧지만 의미 있는 글이 있어 생각을 담아 둔다. [내려놓음 끝에 행복이 있다] 한 젊은이가 지혜 있는 노인을 찾아가 물었다. "저는 지금 매우 힘든 삶을 살고 있습니다. 매 순간 스트레스로 인해 너무나도 힘이 듭니다. 행복해지는 비결을 가르쳐주십시오." 이 말을 들은 노인이 젊은이에게 가방을 건네며 말했다. "지금은 정원을 가꿔야 하니 기다려 주게나. 그리고 이 가방을 좀 들고 있게." 가방에 무엇이 들었는지는 모르겠지만 크게 무겁지 않았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가방이 무겁다는 생각이 들었고 어깨가 쑤셔오기 시작했다. 하지만 노인은 계속해서 일하고 있어서 젊은이가 노인에게 물었다. "어르신, 이 가방을 ..

삶의 이야기 2022.06.03

나의 중학생활 이야기 제5편

아침에 야채샐러드에 썰어 놓은 딸기 반 쪽을 베어 물으니 딸기 향과 함께 옛 추억이 묻어난다. 지금이야 야채. 과일을 계절에 관계없이 먹을 수 있지만, 오십여 년 전에는 제 철에만 맛볼 수 있었다. 오십 년 전, 중학교 1학년. 1학기 중간고사가 끝난 어느 토요일. 탄동국민학교에서 입학한 친구들과 금성국민학교에서 입학한 친구들이 중학교 생활을 두 달 정도 하면서 약간은 서먹서먹한 사이가 남아 있을 무렵, 관평리 동화울로 친구 따라 놀러 가기로 했다. 관평리는 행정구역이 옛 구즉면이기 때문에 관평리가 있다는 것을 두 달 전에 알았으니, 동화울 마을이 낯설기는 더할 나위 없었다. 아무튼 친구들 셋이 관평 친구들에 이끌려 신영이네 집에서 저녁 식사를 하고, 밤이 되어 어설픈 횃불을 들고 관평천 하구, 갑천변으..

故鄕이야기 2022.05.26

마음에 고향, 금병산

지난 연말,생애 네 번째 보금자리를 옮기고 습관 하나가 생겼다. 아침 출근길이면 어김없이 바라보는 산, 금병산이다.금병산은 우리나라 10대 명산도 아니고, 100대 명산도 아니다. 그럼에도 출근길 300m 구간 정 좌측, 10km 떨어진 곳에 금병산 12봉이 보이면, 나는 마력처럼 고개를 돌려 짧은 시간 바라보며 액셀 페달을 밟는다.오늘따라 바람 한점 없이 금병산이 해맑다. 하지만 항상 해맑은 것은 아니다.흰 눈이 수북이 온 아침에는 흰 병풍처럼 보이고, 안개 자욱한 날에는 안개에 묻혀 못 볼 때도 있다. 언젠가는 찻장에 흐르는 봄비 때문에 수채화로 보이기도 한다.어린 시절,사계절 우리 곁에 있었던 산.봄에는 언니, 누나 얼굴만큼 화사한 진달래 꽃이 등성이마다 피어나는 산, 여름이면 높푸른 녹음이 아버지..

故鄕이야기 2022.05.17

금성초등학교 졸업대장

지난 금요일, 모교 총동문회 사무소 개소식에 다녀왔다. 총동문회 사무국에서 모교 1회부터 33회까지 졸업 연번이 기록된 졸업대장을 접했다. 모교는 1949년 개교하여 1950년 1회 졸업생을 시작으로 2022년 73회 8,835명을 배출한 명문 초등학교다. 역사 깊은 모교 졸업대장은 1회부터 10회까지는 한자 필사본으로 되어있고, 11회부터는 한글 워드 복사본으로 되어있다. 연번으로 되어있는 모교 졸업대장 1호 동문은 누구일까? 옛 지명이 자운리(느러리)에 사셨던 이철하(李徹河) 동문이고 이상인(23회) 동문의 아버지가 되신다. 또 대장에는 없지만 73회 정현율 동문이 8,835번째 졸업생이다. 이처럼 소중한 졸업대장을 모교에서 연람 하고 복사할 수 있는 것은 다행이다. 지금은 폐교된 모교의 본교 탄동초..

故鄕이야기 2022.05.09

걸음아! 날 살려라.

걸음아, 날 살려라! 그렇다, 걸음이 살릴 수도 있고 죽을 수도 있다. 직립 보행하는 인간은 특별한 동물임을 자처할 수 있는 뚜렷한 특징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사람은 걷기만 해도 병이 낫는다'라고 하고, 프랑스 사상가 장 폴 사르트르는 "인간은 걸을 수 있는 만큼만 존재한다" 말했다. 그러면 누가 언제 어디서 어떻게 얼마만큼 걸으면 좋을까? 보통 성인이 하루에 일 만보 걷기를 권장한다. 그래서 만보계(萬步計)라는 측정기가 보통명사처럼 불려진다. 하지만 미국의학협회에서 발행한 저널 에리 교수팀이 18,000명을 대상으로 11년 동안 걸음 수와 사망률을 분석한 결과 하루 7,500보 언저리 부터 더 이상 좋아지지 않았다고 한다. 그리고 매일 일만 보를 꼭 걸어야 하는 심리전 부담이 생긴다는 연구 결과다...

삶의 이야기 2022.05.07

새 정부에 바람

며칠 전 가족 모임으로 2박 3일 거제도 여행을 다녀왔다. 거제도 여행 중 식물의 낙원이라 불리는 외도는 말 그대로 커다란 정원 섬이었다. 아름다운 꽃과 기한 나무, 묘한 조형물에 심취하여 밴취에 앉아 망중한을 즐기고 일어나 돌아서는데, 앉았던 밴취 뒤에 나 홀로 피어있는 이름 모를 꽃 한 포기를 보았다. 사람의 손길이나 눈길이 닿지 않은 곳에 볼품없이 피어있는 야생 풀꽃... "어찌 이름 있는 꽃만 아름답다 말하랴" 130여 년 전 동학혁명 때 '나라 일을 돕고 백성을 편안하게 한다'는 보국안민(輔國安民)을 외치다 쓰러진 무명 동학농민을 비유하는 말이다. 요즈음 20대 대통령 당선인이나 준비위원회에서 새 정부를 이끌어갈 조각(組閣)이나 청사진을 접하게 된다. 누구를 위한 조각이고 청사진일까? 예나 지금..

삶의 이야기 2022.04.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