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교 학사 일정표를 보니 긴긴 여름방학이 끝나가는 시기이다. 이만 때 난처했던 나의 초등학교 시절이 아스라이 떠오른다. 고향집 뒤켠 장꽝(장독대)에 이러저러한 단지. 항아리가 있었고, 그 옆으로 조그마한 꽃밭에 채송화. 나리꽃. 꽈리 꽃이 있고, 장꽝 쪽에는 봉숭아 붉은 꽃이 피어있었다. 언제부터 인지는 모르지만, 매년 여름방학이면 어머니는 봉숭아 꽃과 잎 그리고 백반을 돌절구에 빠아서 누나들 손톱에 물을 들여 주셨다. 그때마다 나는 특별히 이쁘다는 느낌이나 관심이 없었다. 하지만 어느 해인가(3, 4학년쯤) 물들이는 누나들이 꼬드겨서 내 손톱 약지와 새끼손가락에도 봉숭아 꽃잎을 싼 비닐을 실로 묶고 하루 밤을 지냈다. 아침에 비닐을 벗기니 손가락까지 벌겋게 물들 봉숭아 물, 아뿔싸! 여자들의 전유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