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題 章敬公諡下

삼가 우리 柳氏의 歷代舊譜와 諸家文獻의 기록을 살펴 볼진대 공의 諡號가 모두 章敬으로 기록되어 그 후 수백년 동안 아무 異論이 없었다. 그런데 隆熙(朝鮮 純宗) 후 甲子(一九二四)년 여름에 큰 비에 산이 무너짐으로 인하여 공의 誌石이 세상에 드러났던 바, 지석 가운데 공의 시호가 章景으로 쓰여 있었다. 이를 본 많은 분들이 "증거하는데 지석 보다 앞설 것이 없다."하여 丙寅(一九二六)년 修譜시에 마침내 敬字를 버리고 景字를 취하여 改書하였다. 아아! 宗中의 前修(先賢), 곧 예전 훌륭한 어른들이 해 놓은 일을 마땅히 힘써 따라야 하겠지만 그러나 修譜는 古今을 논할 것 없이 宗中 전체의 사업으로 의심이 있으면 묻는 것이 세상의 바른 도리인바 이미 그 의심이 있는데도 어찌 입을 다물고 조용히 그만 둘 일이겠..

宗事이야기 2009.10.14

문화류씨세보, 가정보 이해(嘉靖譜 理解)

嘉靖譜 理解 가정보서(영인본) 번역문(飜譯文) 정부자(程夫子)가 말씀하시기를 "천하(天下)의 인심(人心)을 포섭(包攝)하여 종족(宗族)을 수합(收合)하고 풍속(風俗)을 순후(淳厚)하게 하려면 반드시 보계(譜系)를 밝혀야 된다"하시었다. 그러니 보계(譜系)를 밝히는 것이 어찌 조상을 존경하고, 근본을 소중히 하는 의리(義理)와 관계가 되지 않겠는가? 같은 근원(根源)에서 여러 갈래로 나뉘어져 사람도 바뀌고 세대(世代)도 멀어짐은 도연명(陶淵明)의 시(詩)에서 읊은바 있고, 정(情)이 친(親)에서 나타나고 친(親)이 복(服)에서 나타남도 동파 소 식(東坡 蘇 軾)의 글에서 발표되었다. 내가 이에 느낀바 있어 임인년(壬寅年) 겨울에 비로소 수보(修譜)를 하고자 널리 묻고 찾아 모으며 년대를 밝혔으나 빠진 것이..

宗事이야기 2009.09.29

연려실기술(燃藜室記述)

연려실기술 조선 정조 때에 이긍익(李肯翊 :1736~1806)이 펴낸 기사본말체(記事本末體)로 된 역사책이다. 조선 태조 이래 현종까지의 중요한 역사적 사실을 400여 가지에 달하는 야사(野史)에서 자료를 수집·분류하여 사견(私見)이 섞이지 않은 공정한 필치로 엮었다. 별집 제14권 문예전고에 족보에 관한 내용이다. 족보(族譜) 우리나라의 족보는 가정(嘉靖) 연간에 문화(文化) 유씨(柳氏)의 족보가 가장 먼저 창시되었는데, 미세한 데까지 두루 미쳐서 외가도 자세하게 기재하였다. 때문에 뒤에 족보를 꾸미는 집에서 그 족보를 고정(考訂)하였다. 《여술보(藜述補)》 ○ 숙종 을축년에 지평 최규서(崔奎瑞)가 소를 올려 간사한 사람이 족보를 위조하여 종파(宗派)를 옮겨 바꾼 것에 대한 죄를 논하였더니, 윤허를 받..

宗事이야기 2009.08.30

향림화수록(문화류씨대보소사항잡초)

조상님 벌초때 우연히 만난 소 책자 "杏林 花樹錄" 가로 225. 세로 210. 두께 18(m/m) 160쪽에 필사본으로 만들어진 책자에는 이러저러한 내용이 있고 중간쯤에 문화류씨대보(병인보) 수보시(1923~1926) 진천(충북)종무소에서 관리 사항을 정리한 글이다. 자세한 내용은 잘 모르나 참여인. 통문(서신). 규칙. 광고. 편차 등 다양한 내용이 수록되었다. 그리고 뒷편에 200여 분의 주소와 명단이 필사본으로 기록되어 있다. 충남대학교 류주환교수가 해석한 내용 - 이 문헌의 표지에는 "행림 화수록(杏林 花樹錄)"이라 되어 있고, 첫 장 머리에 "文化柳氏大譜所事項雜草"라 쓰여 있습니다. "행림 화수록(杏林 花樹錄)"은 살펴보니 문화류씨 대동보 병인보(1926년)를 만들 때의 기록입니다. 문헌 제목..

宗事이야기 2009.08.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