故鄕이야기

장마철 추억

아름드리 블로그 2024. 7. 6. 10:36

어리 보리한 농부 아닌 농부가 있다.

그 게으른 농부는 장마철에 때 늦은 장마 설거지를 한다.

낮시간 뭐가 바빳는지 못하고 늦은 시간에 허겁지겁 끝내고,

먹다 남은 아메리카노 한 모금 넘기니,

들리지 않았던 자연 소리에 옛 추억이 주마등처럼 훑고 지나간다.


그러니까, 오십여 년 전,

아니 정확히 오십오 년 전 오늘 같은 날,

초등학교 시절.

며칠째 장맛비가 오락가락하는 오후.
얼기미와 주전자를 들고 평소 송사리가 모여 살았던 논 웅덩이로 달려갔다.
흙탕물로 변해버린 웅덩이에서 얼마 전 보았던 송사리를 잡으려고

얼기미를 수 차래 떨쳐 보았지만 허사였다.
오기인지 욕심인지 논 수로가 모이는 도랑을 찾아 대어를 만난 어부처럼 "첨벙" 들어가는데,

미끈덕! 넘어지고 말았다.
아뿔싸, 한 손에 들고 있던 주전자가 저 앞에 둥둥 떠가는 것이 아닌가,
미꾸라지 한 마리와 송사리 두 마리가 들어있는 주전자...
순식간에 눈앞에서 사라졌다.

모든 것을 포기하고 집에 돌아와 투덜거리며 몸과 옷을 씻었다.

그때쯤 아버지가 어떻게 아셨는지 오셔서 꾸지람을 하신다.
내 나름 속상했다.
'고기 잡아서 식구들 맛있게 먹으려고 했는데...'

하는 생각에 방에서 뛰쳐나와 집 뒤 모퉁이에서 씩씩거리 앉아있었다.
속상한 마음에 나왔지만 시간이 갈수록 후회가 밀려왔다.

어둠은 장님처럼 밀려오고, 모기는 팔죽지와 잔등을 가리지 않고 물어뜯는데,

안방 뒷문에 비치는 등잔 불빛은 아른 거리며 무언가 가족들의 목소리가 들린다.

하지만 누구 하나 나를 찾는 가족이 없다.
내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맹꽁이 울음소리만 오늘처럼 울어 됐다.
누나 들이라도 나를 찾으면 몬이기는 척하고 따라가 '잘못 했다'고 하고 싶었다.

그때 처럼 누나들이 야속한 적은 없다.

그렇게 버티고 기다리기를 한 시간이 흘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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