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에 제작한 다큐멘터리 '무문관'을 웨이브에서 보았다. 무문관이란 중국 남송 중기 때 무문 혜개 선사가 쓴 무문관이라는
책에서 비롯되었다고 한다.
본 다큐멘터리 무문관 수행은 전국 사찰의 스님 중 신청하신 열한 분이,
4면이 벽인 한평 반쯤 되는 방과 사 면이 담으로 막혀있는 두 평쯤 되는 뒤뜰 안에서, 방문에 자물쇠를 걸어 잠그고, 각각 1,000일을 벽면만 바라보고 길을 찾기위해 참선한다.
1,000일 동안 바깥세상과 통하는 문은 하루에 한 번 밥그릇을 넣고 빼는 공양구가 유일하고, 의사소통은 그때 말이 아닌 글로 주고받을 뿐이다. 그래서 선방 안에서 스님들의 생활은 알 수 없으나 독방에서 가부좌를 틀고 앉아 묵언으로 벽면참선, 즉 눕지 않고 자지 않는 용맹정진한다는 해설이다.
불가에서 가장 어려운 수행법이라 그런지
이러저러한 사정으로 두 스님은 중도에 포기하신다
근 3년 만에 잠겼던 자물통이 열리고, 스님들은 바깥세상의 햇살을 맞으신다. 주관하는 스님과 불자의 환호 속에서 본연의 길로 가시는 스님들...
나는 불자가 아니다.
그렇다고 억불자도 아니다.
그럼에도 이 장면에 코 끝이 찡한 전율을 느낀다.
그중 서담스님이 밀려오는 파도 넘어 수평선을 바라보며
혼잣말 영상이 흐른다.
'끝이 났는데, 돌아보니까 3년이라는 생각이 안 보여요.'
'나라는 것이 왜 이렇게 힘들게 하고, 원하는 것이 많은지...'
'나를 없애지 않고서는 이 공부에 들어가기가 힘들어요.'
'나이는 들고 사람은 변하는데, 변하지 않고는 그 자리에 있어도,
천일 전의 그 자리가 지금 자리와 변한게 없다는 생각이 들어가요.'
하면서 다큐를 매듭 짖는다.
30년을 불가에 몸 담으며 정진하신 스님이, 천일 동안 용맹정진하신 심중은 무엇일까?
스님은 삶을 이야기하는 것 같다. 삶이 무엇이기에 많은 세월을 불제자가 되어 용맹정진을 했어도 흔들리는 삶을 안타까워 한다.
나 또한 많은 생각에 잠긴다. 삶이란 욕망을 채우려는 집착이 아닌가 싶다.
즉, 욕망이 없는 삶은 있을 수 없다는 생각에 머뭇거린다. 그 욕망이 좁게는 사리사욕을 채우려는 욕망이고, 넓게는 모든 사람이 행복하기 바라는 욕망이다.
그래서 석가는 모든 사람이 자비를 배풀어 사후에 극락에 가길 바랐고,
예수는 무한의 사랑을 배풀어 모든 영혼이 천당에 가는 욕망을 품었다.
욕망을 버릴 수는 없다. 단, 나보다 우리를 먼저 생각하는 욕망으로 채웠으면 하는 생각에 머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