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집에 금이 간 항아리가 있었는데,
그 집주인 여자는 그 항아리를 버리지 않고 물을 긷는 데 사용하고 있었다.
오랜 세월이 지나도 여자는 여전히 금이 간 항아리를 깨지지 않은 다른 항아리와 똑같이 아꼈다.
금이 간 항아리는 미안한 마음에 여자에게 물었다.
"금이 간 저를 어찌하여 버리지 않고 계속 아껴주시는 건가요?"
여자는 미소만 지을 뿐 아무런 대답이 없었는데,
어느 날 어김없이 금이 간 항아리로 물을 길어오던 여자가 조용히 말했다.
"여기 지나온 길을 한 번 보아라."
"아니, 이 깊은 산골 길가에 예쁜 꽃들이 어찌 저렇게 싱싱하게 피어있을까요?"
여자는 빙그레 웃으며 금이 간 항아리에 말했다.
"메마른 산길이지만, 너의 깨어진 틈에서 새어 나온 물을 먹고 자란 꽃들이란다."'
'보리 까끄라기도 쓸모가 있다'라는 말이 있다.
우주 삼라만상은 다 쓰임이 있다. 하다못해 보이지 않는 미물도 쓰임이 있다.
이렇듯 세상에 쓸모없는 물건이 없듯이 세상에 쓸모없는 사람도 당연히 없다.
그럼에도 이 세상에 태어나서 이름을 갖지 못하고 어둠 속에 있는 그림자 영유아가
전국적으로 2천여 명이나 된다는 사회면 기사다.
현시대는 먹을 것이 없어서 굶주리는 시대도 아니고, 못 배워서 문맹 시대도 아니다.
버튼 하나만 누르면 백사장에 바늘도 찾는 시대다.
그럼에도 쓰임의 준비도 못한 체 사각지대에서 살아간다.
사람은 누구나 본인 모습 그대로를 소중하게 여겨야 하며,
다른 사람도 나를 보듯 존중하며 소중하게 생각해야 한다.
일찍이 노자(老子)는 '있음이 이롭게 되는 것은 없음의 쓰임이 있기 때문이다'라고 하였다.
다시 한 번 되새겨 보아야 할 시대에 살고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