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어제와 오늘 그리고 내일 -
한 겨레의 가장 처음이 되는 조상이 시조(始祖)이고,
그 시조가 묻힌 무덤이 시조묘(始祖墓)이다.
그래서 어느 성씨나 시조 무덤은 성스럽고 숭고한 곳으로 자손들의 구심점이 되고 있다.
문화류씨 시조는 대승공(大丞公) 휘 차달(車達)이시다.
묘는 황해도 구월산 남록 초리면 흥학동 인좌(九月山 南麓 草里面 興鶴洞 寅座)에 모시었다.
묘소 아래 묵방재(墨坊齋), 경사루(敬思樓)라 불리는 재실(齋室)이 있다.
족보에 구지도(舊址圖)와 묘도(墓圖)가 전한다.
또 시대에 따라서 비석을 개수(改修)하거나 정화(淨化)하였다는 기록이 전한다.
그리고 모든 문화현 고지도에는 류묘(柳墓). 류대승사우(柳大丞祠宇)라고 꼭 표기되어 있다.
분단 60년,
시조묘가 이북에 모셔져 갈 수도 볼 수도 없거니와 실태조차 알 수 없다.
1920년대 구월산 시도기(時到記)와 참배기,
1943년에 촬영한 사진 몇 장이 전하여 시조묘의 실체를 가늠할 뿐이다.
그러던 중,
2008년 9월 정숙공파 36世, 기환(箕桓)종인께서 직접 방문하여 상세하게 알려졌다.
문화류씨로서는 소경이 눈뜬 격으로 기쁨과 설렘이 가득했다.
지금은 북한에서 보존유적 제1777호, 제1778호로 지정하여 보수 관리하고 있다.
이로써 사실적인 자료를 바탕으로 편집 정리한다.
위성사진
북한은 정서상 씨족 문화가 남한과 다르다.
그래서 시조묘 류릉은 폐묘(廢墓)에 다름이 아니었다.
2008년 종장(宗丈) 류기환 부자께서 류릉을 찾으면서 북한 역사학자들에 의해 가치를 인정받아 보존유적으로 지정되고 성역화하여 오늘에 이른다.
남북이 대치하고 있는 현 상태에서 대승공 할아버지 자손이 할 수 있는 선택지는 많지 않다.
지금은 국가 차원 보다 각 방면의 민간 교류 차원에서 지속해서 두드리는 수밖에 없다.
대종회가 주축이 되어 낙숫물로 바위 뚫듯이 두드리면 열린다.
몇몇 분이 일 년에 한 번씩이라도 향사(享祀)를 올리다 보면,
모든 후손이 자유롭게 참배하는 날은 가까워질 것이다.
2021. 8. 13
34世 成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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