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밑 포근한 일요일,
어리보기한 농부가 겨울 설거지를 하려고 자그마한 농장에 들러
종이 커피 한 잔을 들고 망중한을 즐기고 있는데,
풀 속에서 미처 수확하지 못한 백태 콩 꼬투리가 스스로 벌어지며
흰콩을 아무렇게나 땅에 내려놓는다.
땅에 떨어진 콩이 누구의 도움도 없이 땅에 박히고,
추운 겨울을 지나 봄에 새싹이 돋아나 줄기가 자라고,
잎이 크면서 뜨거운 태양과 긴 장마에 꼬투리가 생기고 영글어,
가을에 무성했던 잎이 누렇게 변하면서 한 잎 두 잎 떨어지고 앙상한 줄기만 남더니,
이네 꼬투리마저 입을 벌리고 씨앗을 떨군다.
이를 보고 우리는 4계절이라 하고,
불가(佛家)에서는 윤회(輪廻)라고 이른다.
그 계절은 80~200억 년 전에 형성된 우주와
45억 년 전에 만들어진 지구의 자전(自轉)과 공전(公轉)으로
윤회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내일, 모레면 새해라 하여 지구촌이 떠들썩하다.
왜 새해가,
아니 1월 1일이 한겨울일까?
음력으로 달 밝은 보름이나 어두운 그믐이던지,
아니면 양력으로 해가 제일 긴 하지나 제일 짧은 동지에
1월 1일. 새해라고 하면 윤회의 의미가 좋지 않았을까?
의구심을 가지고 기원을 찾아보니,
생각보다 단순하다.
로마제국 초기 율리우스 카이사르(Gaius Julius Caesar)가
로마 집정관 임기를 시작한 날을 시작으로 정해졌다는 정설이다.
다시 말해 기원전 45년 1월 1일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전 세계에서 쓰고 있다.
아무튼 영겁(永劫)의 세월 속에서 우주가 생성되었고,
그 신비 속에서 계절이 생겨나고,
그 계절이 윤회할 때마다 우리는 세밑. 새해라 하여
해넘이, 해돋이에 아쉬워하고 탄성을 부르기도 한다.
다 식어버린 커피를 입에 털어 넣으며,
오늘도 나는 시곗바늘이 돌아가는 것은 어김없이 따졌으면서도
그게 바로 세월인 줄은 깨닫지 못하고 살아간다.
2019. 12. 29
아름드리 경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