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 나이 예순 하나 쯤에 (3)
[ 비움의 미학 ]
취미와 운동을 겸해서 수영을 한 지 공백 기간을 합쳐 25년이 됐다.
어제는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회원끼리 역영을 하는데,
지난달 막 올라온 40대 회원이 답답하다고,
빨리 가라고 내 발을 건든다.
'어라~
내가 한때는 동호회 전설로 통했는데...'
자존심과 오기로 추월을 주지 않고 사력을 다해
보란 듯이 역영(力泳)을 했다.
사력을 다한 역영으로 내 몸은 바로 반응이 왔다.
손발은 후들후들 떨리고,
숨소리는 수영장에 메아리치고,
천정에 있는 불빛은 빙빙 돌았다.
내가 어리석음을 깨닫기는 그리 멀지 않았다.
탈의실 거울 앞에 깊은 숨을 몰아쉬는 육십 대 중년이 서 있었다.
공자가 이르기를 인생 나이 60은 이순(耳順)이라 하여,
듣는 대로 이해하고, 어떤 말을 들어도 귀에 거슬림이 없는 나이라 하였는데,
취미로 하는 수영을 아집으로 똘똘 뭉쳐 기를 쏘았으니 어리석지 않다고 하겠는가.
일찍이 석가는 '비움이 클 때 얻음도 크다.'라고 이르고,
예수는 '나눔이 곧 사랑이다.'라고 일렀다.
세상 나이 예순하나는 적은 나이가 아니다.
이제는 더러 비울 줄도 알련만,
숨이 목까지 찰 정도로 채우려만 하였으니
우둔(愚鈍)하다 한들 무어라 답할까?
비움의 미학까지는 아니더라도
하나씩 비우면서 노년을 준비할 때가
지금이 아닌가 싶다.
2019. 5. 30
아름드리 경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