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 편에 글처럼 탄동국민학교에서 30여 명, 금성국민학교 120여 명 친구 중 이러저러한 이유로 30여 명만이 1972년 충남금성중학교에 입학을 하였다.
그 금성국민학교 친구 중에는 앞마을에 사는 민복기(驪興閔氏 31世) 친구도 있었다.
내 친구 복기는 일명 범생이(모범생의 준말)로 선생님이 좋아하시는 공부, 여학생이 좋아하는 외모, 남자 친구들이 좋아하는 의리, 무엇보다 어른들께서 좋아하시는 예절을 갖추었으니, 복기를 아시는 나의 아버지 어머니께는 요즈음 말로 엄친아였다. 그로 인해 나는 항상 복기를 선망의 대상이고 가까이 지냈다.
아무튼, 친구와 같은 중학교에 입학하는 것은 다행이고 설렘이었다.
입학 첫날,
눈 설은 교정 그리고 새로운 선생님과 교과목, 특히 처음 보는 탄동국민학교에서 온 친구들....,
하지만 내 친구 복기는 나보다도 서먹한 탄동초등학교 몇몇 친구들과 백 년 지기를 만난 것처럼 다정다감하게 어울렸다.
소심하고 옹졸한 나는 질투심이랄까?
아니면 배신감이라고 할까?
나 스스로 마음을 웅크리고 묻지도 못하고 몇 날을 복기와 말도 나누지 않았다.
뒤늦게 안 사실이지만 복기의 외가(外家)가 옛 구즉면 관평리 연안김씨(延安金氏) 세거지로 같은 마을에 기영. 향영. 기성. 석영. 신영. 치영이 친구들이 외(外) 4촌, 5촌, 6촌, 8촌이었으니 얼마나 반가웠겠는가?
그로부터 3년,
서먹했던 모든 친구의 뒷모습을 먼발치에서만 보아도 누군지 알아볼 때쯤에 중학교의 배움을 마치고 헤어졌다.
이 글을 쓰면서 옛 생각에 잠긴다.
그 시절 늦은 밤, 아버지께 혼나 볏가리 옆에 쭈그려 앉아 달님께 "훤하게 날 쳐다보면 뭣 허냐! 니가 내 맘 아냐?".
초가을 하굣길, 뽀얗게 흙먼지를 뒤집어쓴 신작로 옆 코스모스를 보면서 "너는 아무도 안 이뻐 하는데, 왜 매일 날 보라고 흔들고 있니?".
이 모두가 아름다운 추억으로 간직하고 싶다.
아름드리 경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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