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이야기

하늘 보고 하늘생각(류인석 열세 번째 수필집)

아름드리 블로그 2016. 6. 14. 12:03

  추석(秋夕)이 지나면서 하늘이 끝없이 넓고 높아졌다. 자칫 모래알이라도 튕기는 날이면 쨍그랑 소리 내며 깨어질 청람색 유리 빛이다. 앞산 능선 타고 앉아 마냥 게으름만 피우던 늦여름 뭉게 구름마저 창천으로 달아난걸 보면 하늘과 새월의 이치는 알 수없는 조화다.

  공원 벤치에 걸터앉아 다시 하늘을 본다. 며칠 전 이승을 떠난 친구가 궁금하다. 모두들 하늘나라로 갔다고 하는데 하늘에는 정녕 티끌 한 점 없으니 말이다. 광활한 구천에는 현세(現世)와 내세(來世)의 수없는 상념들만 뜀박질을 한다.

  존재와 부재의 차이던가, 아니면 유한과 무한의 차이던가, 유(有)와 무(無)가 공존하는 영혼의 세계를 어느 누가 알기나 할까. 있어도 없는 듯, 없어도 있는 듯, 누구도 넘볼 수 없는 천상의 이치다. 신만이 모여 사는 신궁의 이치다. 두 손을 내저어도 잡히는 건 하나도 없다.

  그러나 하늘의 존재를 누가 감히 부정하고, 그 이치와 조화를 누가 감히 거역하랴. 소원과 성취로 가득하고, 기쁨과 슬픔으로 가득하고, 분노와 갈등으로 가득하고, 흥망성쇠와 희로애락으로 가득하다.

  한 점 부끄럼 없는 양심고백도 하늘이고, 맹세코 버릴 수 없는 사랑의 약속도 하늘이다. 정의와 진실은 하늘의 길[天道]이고, 양심과 의리는 하늘의 뜻[天心]이다. 찬란한 햇빛으로, 휘영청 달빛으로, 또 헤일 수 없는 숱한 별빛으로 밤낯없이 부귀영화 가득하건만, 그것들은 모두 내 것이 아닌 허공일 뿐이다.

사시사철 가고 오는 계절의 변화도 하늘 속의 조화다. 비가 되고, 눈이 되는 구름의 변화도, 또 때로는 불빛 번쩍대며 지축을 흔드는 뇌성병력도, 전광석화도 하늘의 조화다. 그뿐인가, 세상사 이리저리 흔드는 바람의 조화도 모두가 하늘에 존재한다. 그것들 역시도 하늘은 내 것이 아닌 공간일 뿐이다.

  욕심을 비우고, 번뇌를 비우고, 삶의 존재마저 비워낸 하늘... . 그래서 하늘은 영원한 인간의 신앙이다. 위기가 닥칠 때면 누구라도 본능처럼 하느님을 찾는다. 거친 풍상에 무거운 재앙이 앞을 막을 수록 하늘을 향한 믿음을 강해진다. 맑은 하늘, 흐린 하늘, 파란 하늘, 붉은 하늘, 높은 하늘, 낮은 하늘..., 변화무쌍함이 하늘의 조화다. 억겁을 이어온 인류 역사가 하늘 아래 있다.

  심지어는 가물어도 하늘을 올려다 보고, 비가 와도 하늘을 올려다본다. 기뻐도 하늘을 올려다 보고, 슬퍼도 하늘을 쳐다보고, 그리워도 하늘을 쳐다본다. 하늘에 대한 믿음이다. "하늘에 부끄럽지 않게 살어라." "하늘이 무섭지 않으냐." "하늘은 알고 있다." "하늘 두고 맹세한다." 등 모두가 하늘을 향한 인간의 믿음이고, 간절한 소망이다.

  존재와 부재로, 시작과 끝으로, 그리고 탄생과 죽음으로 이어진 숱한 윤회의 이치들이 저 하늘 속에 공존하고 있으니 더욱 그렇다. 유구한 천도(天道)가 지엄한 천심(天心)을 가르치고, 청천벽력과 인과응보를 심판한다. 이 세상에 어느 종교, 어느 신앙이 감히 하늘의 이치, 하늘의 진실을 부정하고 거역할 수 있을까.

  부모 없는 자식 없듯. 하늘 없는 신앙도 없다. 석가도 예수도 하늘 아래 존재들이다. 모두가 하늘을 숭배하는 신자다. 까다로운 교리도 없고, 분열된 교파도 없으며, 날 세워 서로 싸우는 갈등과 분쟁도 없다. 굳이 어려운 경전(經典)도 없고, 사치스런 예배당도 없다.

  사방을 둘러봐도 산뿐인 촌락에서 자라면서 나는 어린 시절부터 유난스레 하늘 쳐다보기를 즐겼다. 꿈도 희망도 하늘에 그렸다. 쳐다볼 때마다 하늘은 처음처럼 항상 새롭고 신비스러웠다. 창공에 눈부신 햇살이나, 온갖 형상을 연출해내는 구름의 조화, 또 검은 밤 장천에 뿌려진 초롱초롱한 별빛들..., 모두가 소년기 서정을 흔드는 하늘의 서사(敍事)였다.

  나이든 지금도 나는 하늘을 쳐다보며 상념에 빠지기 일쑤다. 더구나 해질녘 검붉게 물드는 하늘 풍경은 살아온 세월의 풍상으로 얼룩진 가슴이듯, 말년 인생에 석양되어 서산에 기울고 있다. 하늘은 항상 어제 같아도, 세월은 날마다 오늘이다.

  서슬해진 가을밤 하늘에 높이 뜬 달빛, 누구라서 가슴가슴 서정을 새기고, 또 누구라서 절절한 추억을 노래할까. 얼마나 간절한 소망이었기에 별빛은 지금도 변함없이 옛날 그 빛, 그대로다. 낮에는 해와 구름의 조화가, 밤이면 달과 별의 정취가 하늘에 있다. 생사를 넘나들고 승패가 부침하는 긴박한 전장이 하늘에 있고, 선과 악이 춤추는 창세기 에덴동산이 하늘에 있으며, 꿈속에서나 보는 무릉도원이 하늘에 있다.

  정착을 모르는 욕망의 부대낌 따라 향방 없이 쓸려 다니는 바람이듯, 하늘엔 끝없이 갈망하는 인간의 욕심도 흐른다. 한 번도 우리에게 삶의 범주가 어디까지라고 선을 그어준 바도 없지만, 치열한 현실은 모두가 영역다툼이다. 항상 무한을 꿈꾸며 하늘을 쳐다보고 사는 것이 우리들 욕심이다.

  어찌 인간들뿐이랴. 하늘은 모든 생명이 지향하는 본향인지도 모른다. 심지어 흙 속에 뿌리 내리고 사는 식물조차도 생장점은 어김없이 하늘을 향하고 있으니 말이다. 좌측으로만 감아 올라가는 칡(葛)넝쿨과 우측으로만 감아올라가는 등(藤)넝쿨의 인연은 영원한 갈등(葛藤)이지만, 생장점은 똑같이 하늘로 향하고 있다. 하늘은 생명의 소망이고 신앙의 원천임을 누가 부정하랴. 또 한 번 하늘을 보고 하늘을 생각한다,

 

                                                                                                                                                     (2010.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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