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이야기

소울의 대부 박인수

아름드리 블로그 2016. 1. 23. 14:36


노래, 즉 음악은 언제부터 인류 역사에 시작되었는지 알 수 없다.

아마도 사람이 인지(認知)하기 시작할 때부터가 아닌가 싶다.

그러기에 주식(主食)처럼 사람들은 노래를 즐겨왔다.

그 노래는 시대에 따라 취향에 따라 변화하고 달라진다.

그래서 방송인 배철수가 이르기를 좋은 음악은 "사람의 마음을 얼마나 움직이냐에 달려있다"라고 했나 보다.

젊은 시절 음악 감상 마니아라고 자평했던 나에게 충격적인 노래를

삼십여 년 전, 지인의 고급 카오디오에서 들었다.

박인수의 "봄비"

그때는 환상이었지만 그동안 잊고 있었던 노래를 얼마 전부터 스마트폰에 엡을 설치한 벅스에서 즐긴다.

가끔 오늘같이 주(酒) 사랑한 날에는 나 홀로 온 마음을 다 주고 듣는다.

 


인터넷에서 찾아낸 글을 정리하면,

[본명이 백병종인 박인수는 1947년 9월 3일 평안북도 길주에서 태어났다.

6.25 한국전쟁 때 4살인 박인수는 아버지와 형을 남겨두고 어머니와 함께 남한으로 내려왔다.

피란길에 기차 안에서 어머니와 헤어진 그는 고아원과 미군 부대를 전전하다가 미국 어느 가정에 입양됐다.

그때가 12살(1958년)이었다.

미국 생활에 익숙해졌지만, 외로움과 향수는 여전했던 그는 결국 고등학교를 졸업하지 않은 채 3년 만에 한국에 돌아왔다.

영어를 곧잘 하던 박인수는 하우스보이로 일하다가 한 미군의 소개로 미 8군에서 노래를 불러 내공을 쌓았다.

뉴욕 할렘에서 접한 솔 창법을 선보이며 ‘한국 록의 대부’ 신중현 사단에 합류하고 ‘봄비’를 세상에 내놓았다.


가수로서 절정의 인기를 누리던 1970년(24살), 부산에서 만난 곽복화씨와 사랑을 싹 틔우고 부부의 연을 맺었다. 홀로 살아온 그에게 가족은 소중했지만, 늘 음악이 먼저였다. 결국 결혼생활은 5년 만에 끝났고, 복화씨는 아들과 일본으로 떠났다. 그는 다시 혼자가 되었다.

화려함 뒤에는 항상 어두움이 있는 법,

방랑벽이 심한 박인수는 두 번의 이혼과 대마초 사건으로 어두움 속을 전전하며 방송 및 야간업소에 상의도 없이 잡적하는 기행으로 스스로 무덤을 팠다.

그 후 몇 번 재기의 몸부림을 쳤으나 재기하지 못하고 쓸쓸하게 투병 생활하고 있는 그의 앞에 20여 년 만에 아들이 나타났다. 아들이 수소문 끝에 아버지를 찾은 덕에 가족은 다시 모였다. 2012년(66살) 이혼한 아내와 재혼해 잊혀 가는 기억 상실증을 찾아가고 있다.

지금은 일산 요양원에서 요양 중이다.]


봄비 이외에 '당신은 별을 보고 울어 보셨나요', '기다리겠오', '뭐라고 한마다 해야 할 텐데' 등 많지 않은 노래지만 음악적으로 타의 추종을 불허할 만큼 독보적인 소울(soul) 가수였다.

하지만 불우한 환경과 현실을 극복하지 못하고 추락하는 것을 보면 만감이 교차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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