빼앗긴 세월 찾기
프랑스 시인 '랭보'는 "불행 중 다행히도 인생은 한번 뿐"이라고 했다. 사는 것 답게 살아야 한다는 의미이다. 또 우리의 석학 안병욱(安秉煜)선생도 "하나의 생명으로 한번만 살다 가는게 인생"이라고 했다. 삶의 소중함을 깨달아야 한다는 의미이다. 어느새 乙未年도 저물어 간다. 2015년 끝에는 2016년이 시작된다. 세상의 모든 존재는 또 한 켜의 역사를 짊어지고 새 출발 앞으로 다가서야 한다.
빼앗긴 세월(2015년)은 영영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 윤희의 역설이다. 계절은 돌고 돌아도 세월은 직진 뿐이다. 주어지는 시간은 누구에게나 공평하지만 사용하는 시간은 모두 다르다. 지혜나 깨달음의 차이다. 1회뿐인 삶과, 1회뿐인 시간을 어떤 각오로 사느냐에 따라 삶의 결과도 달라지게 마련이다.
우주 공간과 시간은 무한하다. 그러나 인간은 유한하다. 재깍대는 시계의 초침소리가 인간들에게 종점으로 가는 세월의 발자국소리를 쉼 없이 알린다. 지난 1년의 세월 속에서 내가 살아온 결과는 과연 무엇이었나. '작은 기쁨', '작은 보람' 하나로 만들어 놓았다면 우리 삶은 다행이고 축복이다.
우리는 세월의 의미 앞에서 방황하기 예사다. 불가에서 말하듯 돌고 도는 윤회(輪廻)의 동그라미인지, 흰두교의 설법처럼 나선(螺線)의 바퀴인지, 아니면 기독교의 가르침대로 직선의 질주인지? 세월은 모양도 없고 색상도 없다. 절대로 인간의 손에 잡혀들지도 않는다. 잡았다 싶으면 어느새 빠져나갔다. 오직 손에 잡히는 것은 세월이 아닌 시계와 달력뿐이다. 누구에게도 예속되거나 소유될 수 없는 게 세월이다.
그래도 누구나 세월을 말할 때는 모르는 게 없다. 몇 살이냐고 물으면 선뜻 대답한다. 그러나 막상 세월의 진실이 무엇이냐고 물으면 대답이 궁해진다. 계절이 바뀌는 것은 알아도 세월의 흐름에 대해서는 대부분 무관심이다. 진실을 모르고 살고 있다는 증거다. 인간이 누리는 삶의 진실은 바로 세월이다. 은연중에 삶의 무게는 느끼면서도 세월의 진실은 깨닫지 못하고 있다. 유한의 운명 속에서 무한만을 고집하고 있다.
세월의 정체, 세월의 진실을 안다면 삶의 보람도, 삶의 가치도 알 수 있을 텐데 말이다. 우리의 세월타령은 고뇌의 허공에서만 맴돌고 있다. 차라리 모르는 것이 지혜일 수도 있다. 그러나 삶 속에서 가장 소중한 것 하나를 고르라면 누구나 거침없이 세월을 택할 것이다. 또 하나를 붙잡으라면 세월의 정체를, 하나만 알라면 세월의 진실을, 그리고 하나만 이루라면 세월의 보람일 것이다. 누구나 행복하기를 원하는 것도 세월에 대한 진실이다.
삶의 성취와 보람도 세월의 진실 속에서만 빛이 난다. 비록 붙잡고자하는 뜻은 서로가 다르더라도 가장 가지고 싶어하는 것은 모두가 세월의 진실일 것이다. 곳곳에 타임머신을 만드는 것도 알고 보면 세월의 진실 깨닫기다. 우리는 공간속을 여행할 수 있으나, 시간(세월)속을 여행할 수 없다. 세월 속을 여행할 수 있는 것은 오르지 문학과 예술뿐이다. 작가의 상상력은 4차원의 세계를 달릴 수 있기 때문이다.
누구나 과거의 모습이 궁금하다. 그러나 더욱 궁금한 것은 미래의 모습이다. 10년 후 내모습은 어떻게 변화될까. 세태는 어떻게 달라질까? 내 삶의 보람은 무었으로 다가올까? 누구라도 한번쯤은 생각해볼 것이다. 작지만 1원은 억만장자의 기본이다. 태산도 알고 보면 흙먼지가 쌓여서 이루어진다. '작은 기쁨'은 '큰 기쁨'의 밑천이다.
무한의 단절은 시간이고, 시간의 연속은 세월이다. 이제 우리는 지나간 1년을 반성하고, 새해의 소망을 다짐해야 한다. 똑같은 세월 속에서 누구의 삶이 더 행복해질까. 답은 뻔하다. 과거를 돌아보고 반성하는 것도 빼앗긴 세월 찾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