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가 류인석님의 13번째 수필집, '바람인가 세월인가'에서]
무엇으로 존재하는가
매미들의 울음소리도 어설퍼진 초가을이다. 세상사 자글대는 넋두리 한다발 짋어지고 가까운 보문산 오솔길로 접어든다. 동행도 없고, 또 기다리는 사람도 없으니 굳이 눈치 보고 서두를 이유도 없다. 또 정해진 목표도 없으니 그림자 벗 삼아 발길 내키는 대로 휘적휘적 걷는다. 특별하게 볼일 없는 날은 일과처럼 돼버린 산책길이다. 새소리, 물소리, 바람소리 모두가 모난데 없이 산길에 들어서면 마음이 푸근해진다.
여름 장마에 깍이고 패였기 때문인가. 오늘 택한 길은 조금 험하다. 모서리 사납게 일으켜 세운 돌멩이들이 흡사 세상인심 같고, 무질서하게 튀어나온 나무뿌리가 얼기설기 불거진 내 손등에 핏줄 같다. 오늘은 왜 하필이면 이 길을 택했을까, 혼자 중얼거리며 한눈파는 순간, 튀어난 나무뿌리에 걸려 하마터면 낭떨어지 밑으로 곤두박질칠 뻔했다.
길옆 작은 바위 돌에 걸터앉아 놀란 가슴 진정하며 심사 곱지 않은 눈길로 발길에 채인 나무뿌리를 다시 한 번 흘겨본다. '저놈의 뿌리 때문에 다치거나 놀랜 사람이 나 말고도 한둘이 아닐 것'을 연상하니 슬그머니 튀어난 나무뿌리가 밉기도 하고 화도 난다. 옛 말에 "잘난 놈은 못난 놈 치고, 못난 놈은 강아지 친다."고 했던가. 모든 잘못을 약자에게 떠미는 교활함이라니..., 내 심사 역시 다를바 없다. '저놈의 뿌리 그냥 내버려서는 안 되겠군, 내일은 휴대용 톱을 가지고 와서 산책로에 튀어나온 나무뿌리들을 모조리 잘나내어 여러 사람들에게 좋은 일 좀 하리라.' 속으로 다짐을 하는 순간이다. "이놈! 네 나이가 얼마더냐?"생각 하나가 번개처럼 정수리를 후려친다. '튀어나온 나무뿌리를 잘나낼게 아니고, 산길에 조심성 없이 다닌 네놈의 잘못부터 반성하라.'는 진리다.
맞다! 애매한 나무뿌리 탓할 게 아니구나 싶어 이마에 땀 닦고, 마음 가다듬어 하늘을 올려다본다. 울창하게 자란 나무들마다 수간(樹幹)을 곧추세워 생장점들 모두가 의기양양하게 하늘로 뻗고있다. 내일을 향한 나무들의 푸른 꿈 합창이 환청(幻聽)되어 우렁차다. 높이 치켜들었던 시공을 슬며시 거두어 나무밑둥치 뿌리 쪽으로 내리면서 생각해본다.
생장점 하나 하늘로 올리기 위해 땅속으로만 파고들어야 했던 나무뿌리의 간절한 염원이 형상화되어 나를 빤히 올려다보고 있다. 마치 잘라내려고 마음먹었던 나무뿌리가 내 생각을 읽고 있는 것 같다. 산길에서 걸리고 넘어지게 하는 것들이 어찌 나무뿌리뿐이던가, 오솔길 통행인들에게 장애가 된다고 죄 없는 나무뿌리를 모두 잘라낸다면 하늘로 향한 저 울창한 나무들의 미래는 어떻게 될까... .
"알았다. 내 생각이 부족했다. 장맛비에 패어 튀어난 나무뿌리에 흙 한 삽 덮어주지는 못할망정 잘라낼 것을 생각한 내가 비겁했다."
하늘로 향하는 수많은 수간들의 생장점은 숲의 미래고, 뿌리의 희망이 아니던가. 수간 한 줄기를 하늘로 올리겠다고 뿌리는 햇빛 마저도 마다한 채 평생을 오로지 침울하고 음습한 땅 속으로만 파고드는 숙명을 택한 것 아니겠는가.
언뜻 부모님 생각이 떠오른다. 하늘높이 키우고 싶은 나무의 본성은 자식 가진 부모 마음과 무엇이 다를까. 자식들 가르치고 출세시키기 위해 음지에서 자기희생 모두 바치는 게 부모 마음이다. 나를 낳고 키워 세상에 내세우기 위해 우리 부모들도 뭇 사람들의 발길에 차이고 짓밟히는 나무뿌리들처럼 온갖 수난 고통 겪어내셨을 것이다.
낳아준 게 죄인 양 험한 세상 모진 일을 감당해내시느라 등줄기 한 번 곧게 펴지 못한 채 사셨던 부모님은 생각만으로도 가슴이 뭉클해진다. 내 인생의 뿌리요, 내 인생의 근본이 아니던가. 허구 한 날 패이고 무너져 흙 밖으로 드러날 때도 있었고, 때로는 짓밟히고 잘려야 하는 고통인들 어찌 한두 번이었을까.
사람들의 발길, 손길에 짓밟히고 상처 나면서도, 또 태풍 홍수에 사정없이 뽑히고 떠내려가면서도, 줄기 하나 곧게 키워내기위해 자갈 속, 바위틈 가릴 것 없이 집요하게 땅속으로만 파고드는 뿌리들의 천형(天刑)적인 생태를 생각하면 만물의 여장임을 자처하는 인간 도리로서 오히려 민망하다.
내 발길에 채인 나무뿌리가 무슨 죄(罪)이랴. 전적으로 내 잘못 때문이었다. 탓할 수 없는 나무뿌리에 원망의 눈길을 보낸 건 교활함이다. 오늘의 세상에 나를 존재케 해준 내 뿌리, 우리 부모님들의 관심을 망각 했다는 사실에 대해 스스로가 부끄럽다. 현실에 눈이 어두워 내가 오만해지고 비겁해진 탓이다.
보낸 적 없는데 가버리고, 주는 척하더니 빼앗아간 세월은 그냥 흐르기만 하던가. 까맣게 잊었다가도 어느 순간에 되살아나서 다시 울적하게 하는 게 부모님 생각이다. 세태가 달라지고 가치관이 변질됐어도 부모님 만은 가슴에 품어야 하는 절대가치이고, 실존의 뿌리다.
자신을 태워 어둠을 밝히는 촛불이듯, 우리는 뿌리의 희생을 통해 세상에 나와 하늘을 보며 오늘을 살고 있는 것이다. 존재했다는 생각만으로도 깊은 울림을 주는 뿌리... . 나는 지금 이 자리에 무엇으로 존재하는가.
(2014. 9.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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