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에 예조판서 서준보(禮曹判書 徐俊輔)의 계주(啓奏)로 순조(純祖) 32년 壬辰(1832)에 9대 방계조(傍系祖) 휘 시채(始采)께 정려(旌閭)가 내려지고, 9대조 휘 시명(始明) 동몽교관(童夢交官)의 추증(追贈)하였다.
본 정려는 1832년에 연기군 남면 봉암리에 건립하였으나, 그 후 공(시채)의 4세손인 원식(源植)이 해미로 이거하셨고, 원식의 아드님 기종(基宗)이 현제 서산시 장동으로 입거하면서 산도에 세거하시게 되자 공(시채)의 7세손인 형열(亨烈)과 창열(彰烈)등이 주도하셔서 1924년에 정려를 현제의 위치로 이건하시게 되었다.
그리고 6대조 휘 규진(奎鎭 28世 1788~1842)께서 선세 효열(孝烈)의 포증(褒贈)을 위하여 오랫동안 서울에 머물러 계셨는데, 벗으로 지내던 심암 조두순(心庵 趙斗淳). 호하 박회수(壺下 朴晦壽)등 상신(相臣)들이 모두 공의 천품이 고상하고 효우(孝友)가 돈독함을 찬양하고 증시(贈詩)가 있다.(원본 족숙 지원님 보관)
영의정 심암 조두순(心庵 趙斗淳) 시(詩)-임진년(1832)
“일열도 아름다운데 육효를 겸했으니, 단정과 화고가 시골에 빛나도다.“
2013년 4월 10일
僉樞公 11世孫 成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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