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동리(장동)
1970년 장동리 항공사진
1. 연혁 : 적오산 아래쪽으로 낮은 산악지대와 추목천을 끼고 넓은 들을 소유하고 있는 곳이 장동이다.
옛날에는 자작농 보다 소작농가가 많았던 동네로 1760년경에 가호수는 100호가 넘었다는 기록을
보면 상당한 농가가 밀집되어 윤택한 지역이였었다. 그 후 1935년도의 장자울 가호수는 25호였고
정삼골이 29호, 새터마을이 16호였다. 연구단지가 들어오기 전 1976년도 통계에는 장동의 가호수
는 14호였으며 인구는 565명이었다.
2. 마을 : * 장재울 - 황충미 북쪽의 마을로 240여년 전에는 100여호가 자리한 큰 마을에 장자가 살았으므
로 장자골, 장자울, 장재울이라고 부른다.
* 새터 - 황충미마을 남동쪽에 있는 마을로 100여년 전에 새로 생겼다하여 새터, 새뜸 신대(新
垈)라고 부르는 마을이다.
* 정삼골 - 새터 남동쪽에 있는 마을에 정승이 세사람 나올 명당이 있다하여 정상골로 부르다가
변하여 정삼골, 정삼곡(政三谷)이라고도 부르던 마을이다.
* 황충미 - 황충미산 아래에 있다해서 붙여진 마을이다.
3. 산 : * 두루봉 - 장재울 마을 남쪽으로 정삼골 북쪽 뒤에 있는 산의 모양이 둥글게 생겼다 하여 붙여진
두리봉 또는 두루봉이라고 부르는 산이다.
* 생금봉 - 새터마을 뒤에있는 산으로 구전에 따르면 옛날부터 산속에 만양 정도의 생금이 묻혀있
다는 산 이라고 생금봉(生金峰)이라고 부른다.
* 황충미 - 장재울마을 남쪽에 68m의 나지막한 산의 모양이 메뚜기과에 속하는 벌레인 누리(황충
미)의 모양을 닮았다고 황충미 또는 누리산이라고도 부르는 산이다.
4. 고개 : * 가래고개 - 장재울에서 새터로 넘어가는 고개로 새로 생긴 새터마을이 고개 때문에 좋은 일이
생기지 않아 고개를 높인 결과 좋은 일이 생겼다 한다. 비가 와서 비탈길이 낮아지면 새터마을
사람들이 가래를 들고 와서 이 고개를 높이곤 했다하여 가래고개라고 부른다.
5. 골짜기 : * 샴골 - 정상골 서북쪽에 있는 큰 골짜기 동쪽에 있는 골짜기에 좋은 샘이 있어서 샘골이라 부
르다가 변하여 샴골이라고 부른다.
* 큰골 - 정상골 서북쪽에 있는 큰골이 있는데 큰골짜기라고 부른다.
* 엄나뭇골 - 샴골짜기 동쪽으로 골짜기에 엄나무가 있어서 붙여진 이름이다.
* 농골 - 절텃골 동남쪽에 있는 농골은 골짜기에 논이 있다 해서 논골이라 부르다가 변하여 농
골이라고 부른다.
* 절텃골 - 엄나무골 동쪽에 절터가 있어서 붙여진 절터골이 있다.
* 임천골 - 정상골 남쪽에 위치한 골짜기에 나무숲속에 약수터로 부르는 바가지샘이 있다하
여 임천골이라고 불러오던 골짜기다.
* 삼밭골 - 새터마을 동쪽에 삼밭이 많아서 붙여진 이름으로 삼박골이라고도 부른다.
* 오리골 - 정삼골 동북쪽에 오리가 먹이를 먹는 형국인 오리골이 있다.
6. 고적 : * 충열사 - 황충미마을 앞 삼거리에 충열사가 있다. 한일합방 전후하여 조국수호를 위해 순국한
충신 민영환(閔泳煥), 최익현(崔益鉉), 안중근(安重根), 이준(李儁), 윤봉길(尹奉吉) 등 의사를
모신 사당 으로 1967년 보인회가 건립했다.
* 류인형효행비 - 충열사 앞에 1968년에 세운 비석에는 "문화류인형효행비(文化柳寅衡孝荇
碑)"라 새겨진 2m 높이의 비 가 있다.
7. 현제 : 전원지대였던 장동이 완연한 연구단지로 변화하여 대전광역시지방공무원연구원. 산업연구원. 대
덕대학. 대덕공업고등학교. 한국기계연구원을 비롯한 10여개의 연구소가 자리하여 자연부락의
면모가 살라져 가고 있다.
2006년 장동 위성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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