故鄕이야기

충남 대덕군 탄동면 자운리(自雲里)

아름드리 블로그 2006. 12. 25. 14:26

자운리(자운동)1970년 자운리 항공사진

 

1. 연혁

비교적 낮은 산악지대와 들이 자리한 지역으로 고려 시대에 마을이 들어선 것으로 보이나, 삼현(三賢)들. 밤나무정이 마을에서 더러 신라통일시대의 기와 조각이나 토기편이 발견된다고 하지만 아직 확실하지는 않다.

금병산 남쪽으로 산줄기가 낮아지면서 진산을 이루는데 동쪽으로는 백운이고, 북쪽으로는 청운, 남쪽으로는 자운(紫雲)의 삼운 사이에 있는 살기 좋은 땅으로 알려진 잔 산 아래에 마을이 있다 하여 잔골 또는 자은동(慈恩洞), 자운동(自雲洞)이라 부른다.

1760년에 발간된 여지도서(輿地圖書)에 따르면 자은동에는 102호에 256명이었다. 느러리와 밤나무정이를 포함하지 않은 것을 볼 때 자운동의 들을 끼고 300호가 넘었을 것으로 그 시대 농촌의 기반이 잡혔던 마을이었다. 그 후 공주읍지에는 가호수가 105호이고, 1979년도에는 116호였고, 인구는 630명이었다.

 

2. 마을

* 느러리 - 자운리 북쪽에 자리한 마을로마을 앞에 선돌이 있었으므로 돌서니 입석리(立石里)라고 부르는 마을로, 늘어진 잔 산밑에 있는 마을이라 붙여진 마을로 자운리에서는 가장큰 마을이다.

* 고내골 - 밤나무정이 남동쪽에 자리한 마을이다. 구전에 따르면 옛날에 냇물로 큰 물고를 내서 땅을 기름지게 한 마을이라 물꼬를 낸 마을 고내골이라고 부른다.

* 밤나무정이 - 느러리마을 남쪽 들 건너에 있는 마을로 옛날에 밤나무 정자가 많이 있다하여 율정(栗亭), 율촌이라고 부른다.

* 호박골 - 밤나무정이 북쪽에 새로 된 마을로 호박을 키우는 호박밭이 많은 마을이라 호박골 또는 오봉춧골이라고도 부른다.

* 새뜸 - 느러리마을 남쪽에 새로 생겼다 해서 붙여진 작은 마을이다.

 

3. 산

* 안산 - 느러리마을 앞에 가장 아름다운 산이라 안산(案山)이라고 부른다.

* 칼날봉 - 고내골 마을 뒤에 산의 모양이 칼날같이 날카롭게 생겼다 해서 칼날봉이라고 부른다.

 

4. 골짜기

* 가장골 - 느러리마을 앞 안산 옆의 골짜기로 안산에 있는 골짜기라 가장골이라고 부른다.

 

5. 들

* 삼현 - 느러리마을 앞에 펼쳐진 들인데 옛날에 마을이 있을 때 세 사람의 현인(賢人)이 나온 마을이라 해서 삼현이라 불렀다. 지금은 마을은 없어지고 들만 남아있다.

* 접다랑이 – 오봉촛골 마을 앞에 있는 들이다. 다랑이 논이 많다 해서 부르는 들이다.

* 물둠벙 - 느러리마을 앞에 넓게 펼처진 들인데 큰 둠벙이 있어서 물이 많아 땅이 비옥하기로 유명한 들로 물둠벙 또는 동안이라고도 부른다.

 

6. 민속

* 느러리산신제 – 느러리 마을 뒷산에 있는 산신당에서 매년 음력 10월 초 마을에 부정이 없는 남여를 제관으로 선정하여 산신제를 지낸다.

* 느러리돌성제 - 느러리마을 앞에 높이가 10자 정도 되는 갓을 쓴 선돌에서 매년 음력 정월 보름날 돌성제를 지낸다. 이곳에 선돌이 세운 것은 고냇골 뒤 칼날봉이 마을을 해친다고 하여 세웠다. 돌성제는 마을에서 선출한 유사와 축관이 주관 한다.

* 느러리팽나무 - 보호수로 지정된 수령이 200여 년이고, 높이가 20m, 둘레가 4m인 팽나무가 있다.

 

7. 전설

옛날에 느러리 마을에 같은 해에 태어난 처녀. 총각이 서로 사모하였다. 그러던 중 나라에 변란이 이러나 총각은 전쟁터에 나갔고, 처녀는 느러리 마을 남쪽 언덕에 올라가 그 총각이 무사히 돌아오기만을 빌었다. 그러기를 몇 달, 총각이 전사했다는 소식을 듣고 낭자가 식음을 전폐하고, 총각을 기다리던 언덕에서 죽고 말았다.

그 후 전쟁터에서 죽은 줄 알았던 총각이 살아서 돌아와 자기가 죽은 줄 알고 죽었다는 낭자 이야기를 듣고, 그 자리에서 따라 죽었으니, 마을 사람은 두 처녀. 총각이 못다 이룬 사랑을 안타까워하면서 그 언덕에 함께 묻어주었다.

이듬해 봄, 무덤가 옆에 어린나무 한그루가 돋아나 마을 사람들은 처녀. 총각의 환생이라 여기고 정성껏 키워 마을의 보호수가 된 느러리 팽나무 전설이다.

 

8. 고적

* 민삼석효자정려 – 숙종 때 효성이 지극한 민삼석에게 효자 정려를 내려 영조 12년(1726)에 목조로 정문이 세워졌다.

* 이세구묘 – 새뜸 마을 뒷산에 이세구의 묘가 있었다. 인조 24년(1646)에 태어나 진사시에 합격하여 예산 현감, 홍주목사를 지냈다. 벼슬보다 학문에 명성이 높아 저서로 "양와집" 13권이 있다.

 

9. 현재

옛날에는 부유한 농촌지대가 오늘에 이르러 대덕연구단지의 지역 또는 군사적 시설로 변화하고 있다.

 

2006년 자운동 위성사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