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성리(신성동)
1970년 신성리 항공사진
1. 연혁
산으로 둘러 쌓여있으므로 신성이라고 부른다.
1908년 추목 숯골에 있는 탄동면사무소가 주막거리로 옮겨오면서 더욱 발전의 속도가 빨라
졌다. 그 후 1940년에 산성이 마을의 가호 수는 50호 각장골이 40호에 지나지 않았고. 연구
단지 조성이 되기 전 1979년 신성리의 전체 가호 수는 113호에 인구는 불과 608명에 지나지
않았던 것이 1973년 박정희 대통령의 대덕연구단지 계획이 발표되고 1984년 인삼연초연구
소가 들어서면서 신성리는 변모하여 어디서도 주막이 많았던 100년 전이나 학교 다릴 때 보았
던 40년 전의 신성리 모습은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가 없다.
2. 마을 : * 각장골 - 아랫말 동북쪽에 있는데 마을의 지형이 소의 뿔처럼 생겼다 해서 부르는 마을
이다.
* 승적골 - 신성이 마을 서쪽으로 자리한 마을로 옛날에 큰 절이 있었는데 스님이 도적들
을 잡아 선(善)한 사람으로 깨우친 절이 있는 마을이라 한다.
* 주막거리-승적골 마을 뒤쪽으로 옛날부터 큰 주막이 있어 많은 사람이 모여 술을 마
시던 곳으로 1900년대 초기에 탄동면사무소가 옮겨 와서 행정적 중심지가 되었다.
* 숯골 - 신성이 마을 남쪽의 마을이다. 탄동에는 추목의 숯골과 신성의 숯골이 있는데, 추
목의 숯골은 일명 본동(本洞), 탄동(炭洞)이라고 부르지만, 신성의 숯골은 숙동(淑洞)이라
고 부른다. 조선시대에 숯을 많이 구웠던 마을로 전해오는 구전에 의하면 조선 광해군 때
유교칠신( 遺敎七臣)의 한 사람인 상촌 신인(象村 申欽)이 파직되어 김포에 내려가 살 때
소식 없이 자취를 감추어 이곳에 와서 숯을 구웠다 한다. 그 후 사람들이 감쪽같이 숯장이로
변해서 일에 충실한 그의 품격을 높이 사서 이 마을을 숙동이라 부르며 자랑했고 심흠
은 뒤에 영의정에 오른 선비였다. 숙동 아래에 아래숯골이라고 부르는 마을이 있다.
* 신성이 - 숙동 북쪽에 있는 마을로 산이 성처럼 두른 지역에 새로 마을이 들어섰다 하여
신성이 또는 성동(聖洞)이라 부르는 마을이다. 위쪽에 있는 마을을 웃말, 상촌(上村)이
라 부른다.
* 장방촌 - 신성동사무소 남동쪽에 새로 생긴 마을로 대덕연구단지가 들어서면서 장재울
마을과 방고개 마을의 머리 글자를 따서 부르는 새로운 마을이다.
3. 산 : * 남산 - 신성이 마을 남쪽에 있는 산으로 남쪽의 궁동과 어은동의 경계를 이루는 산이다.
4. 골짜기 : * 머굴 - 무술골 남쪽에 남작골고개 옆에 있던 골짜기로 옛날에는 나무가 무성하여 어
둠침침하다 하여 먹골로 부르다가 변하여 머굴로 부르는 골짜기 이다.
* 가재골 - 아랫숯골마을 뒤에 있는데 옛날에는 골짜기의 물이 맑아 돌사이에 가재
가 많았다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 너박장골 - 각장골 뒷편에 골짜기가 넓다해서 붙여진 너박장골이 있다.
+ 무술 - 웃말 안쪽에 있는 여수바위 옆의 골짜기다. 지금은 한국인삼연초연구소 남쪽
산에 있다.
5. 들 : * 한섬지기들 - 신성이마을 앞으로 펼쳐진 들이다.
* 승적들 - 아랫말 북쪽에 있는 들이다.
* 아랫들 - 신성이마을 아래쪽에 펼쳐진 들이다.
* 비선거리골 - 비가 서 있었다 해서 부르던 들로 현재는 쌍용중앙연구소가 들어서 있다.
* 남산밑 - 신성이마을 남쪽 남산아래에 펼쳐진 들이다.
* 수천이들 - 현재 호남석유 앞의 큰 들을 수천이들 또한 번답들 이라고도 부른다. 전해오는
구전에 따르면 앞으로 이 들에는 많은 사람들이 자리를 정할 들이라는 예언을 해오던 들로
연구소가 자리잡고 수천명의 사람들이 자리하는 수천이 들이다.
6. 기타 : * 여수바위 - 웃말 안쪽 산에 묘하게 생긴 큰 바위로 밑에 여우가 살았다 하여 여우바위라
고 부르다가 변하여 여수바위라 부르는 바위이다.
* 말바위 - 아랫숯골마을 뒤에 있는 가재골 골짜기 개울 바닥에 중방같은 바위로 말 발자
국과 사람 발자국이 있는데 옛날 한 장수가 무예를 닦을때 남긴 자국이라 한다.
* 베락수 - 가재골 말바위에 있는 폭포로 벽에서 물이 떨어지는 것 같다 해서 베락수 또는
벼락수라 부른다.
7. 고적 : * 류인의오형제혜시불망비 - 류주사 오형제가 재산을 처분하여 곤궁에서 허덕이는 사람
들에 적덕을 베푼 비로 1908년에 세워진 비이다.
8. 현재 : * 신성동사무소. 파출소. 우체국. 농협. 성덕중학교. 금성초등학교. 한국인삼연구소. 쌍룡
중앙연구소. 린나이코리아. 한국화약구룹연구소등 이 있고 여러 아파트가 군락처럼 자리
잡고 있다.
2006년 신성동 위성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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