故鄕이야기

충남 대덕군 탄동면 도룡리(道龍里)

아름드리 블로그 2006. 12. 6. 14:21

도룡리(도룡동)

1970년 도룡리 항공사진


1. 연혁
:  도룡리 뒷산의 모양이 도룡뇽과 같으며 산이 또한 용이 물을 마시는 형국이라 하여 도룡리다.

             삼국시대에 사람들이 정착한 것으로 보이고 통일신라시대 그리고 고려시대 말기부터 반촌(班

             村)으로 자리잡아 조선시대 초기부터 명문인 여흥민씨(驪興閔氏)가 정착하여 현대에 이르렀다. 

             조선 영조 때 여지도서(輿地圖書)에 따르면 경운이의 가호 수는 76호에 남자 123명, 여자

             111명이었고 호암리는 가호 수 73호에 남자 91명, 여자 111명 이었다. 그 후 조선 말기 공주읍

             지는 경운이의 가호 수가 59호에 242명이었고, 호암리의 가호 수는 77호에 인구 237명으로 약간

             의 가호 수 변동을 보인다. 근대에 개발되기 전(1979) 통계에 따르면 가구 수 174호이고 인구는

             848명이었다.

 

2. 마을 : * 경운이 - 도룡마을 북쪽에 있는 마을로 산에 서리는 구름이 아름답고 마을에는 사람들이 항

                 상 풍류에 젖어 태평한 사람들이 모여 사는 마을이라 경운(京雲), 경운이, 경운리라 부른다. 

              * 도룡 - 호동마을 남쪽에 자리 잡은 마을로 뒷산의 모양이 도룡뇽과 같다 하여 부르다 변하여

                 도룡리라 부르고 원마을은 원도룡이라고 부른다. 

              * 호동 - 도룡마을 북쪽에 자리한 마을로 뒷산 모양이 호랑이의 모양을 닮았다 붙여진 이름이

                 이고, 부엉바위가 있다 해서 부엉골이라고도 부른다. 여흥민씨들의 집성 마을이다.

              * 선창 말 - 도룡마을 서남쪽으로 갑천가에 자리한 마을로 선창(부두)이 있다 하여 붙여진 이름

                 이고 때로는 상신리라고도 부른다. 택리지(擇里志)를 보면 서해안에서 장사 배나 고깃배가

                 금강을 거슬러 강경, 신탄진 새여울을 지나 갑천 즉 선창말에 소금이나 생선 배들이 들어와

                 유성장 터에 해산물을 풀던 포구가 선창말이다.

 

3. 산 : * 우성이산 - 모래보 들 뒤에 길게 소가 누워서 조용히 갑천 쪽을 바라보고 있는 형국이라 우성이

               산이고 높이는 179m이다.

 

4. 고개 : * 경운이 고개 - 경운이 마을에서 우성이산을 넘어 매낙골고개(꽃바위)로 이어지는 긴 고개로

                  마을 이름을 붙인 고개이다.

 

5. 골짜기 : * 불당골 - 도룡마을 북쪽에 있는 골짜기로 불당이 있었으므로 붙여진 이름이다.

                  * 부엉골 - 북쪽으로 또 하나의 골짜기가 있는데 뒷산의 모양이 범(호랑이)의 모양이며,

                     부엉바위라고 부르는 바위가 있어서 부엉골이라고 부른다.

                  * 가재골 - 우성이산 북서쪽으로 골짜기 모양이 가재의 발처럼 생겼다 해서 생긴 이름이다.

 

6. 들 : * 보래보들 - 도룡마을 앞에 있는 들인데 들 위쪽에 모래로 만든 보(洑)가 있었는데, 비가 많이 오면

                  갑천의 물이 넘쳐서 모래가 모여서 자연스럽게 만들어진 들이다.

 

7. 기타 : * 부엉바위 - 호동마을 뒷산에 있는 바위로 옛날에는 부엉이가 북쪽 금병산에서 날아와 울곤

                 하는 바위이며, 밤에 부엉이가 울면 마을에 슬픈 일이 생기곤 하여 노인을 모시고 사는 집에

                 서는 긴장을 하였다 한다. 

               * 보래보 - 도룡마을 앞으로 북쪽에서 흘러오는 냇물(금병천)을 막고 물을 담아 주변 경작지

                  에 물을 댔었다. 지금은 보래봇들에 파묻혀 없어졌다. 처음에는 모래보라고 부르다가 변하

                  여 보래보라고 부르며 그 위쪽에 물레방앗간이 있었는데 거기가 방아다리이고 건너다니는

                  판목 다리도 있었다 한다.

 

8. 고적 : * 도룡리 고분 - 우성이산 서남쪽 중턱에 많은 고분이 있다. 더러는 신석기시대 유물이 발견돼

                 고, 원도룡마을 주변에서는 통일신라시대와 고려시대 고분이 많이 발견되고 백제 때의 고분

                 도 더러 발견된다.

              * 사교루 - 부엉골에 있는 누각으로 1668년에 민유중이 민씨들의 자제들을 교육하기 위해

                 서 세운 강당이다. 그 후 1980년 다시 중수하였다.

              * 여산송씨 묘비 - 여흥민씨의 텃밭을 이루게 한 여산송씨의 묘와 묘비가 부엉골 마을 왼쪽 언

                덕 위에 있다.

              * 기타 - 송씨부인 묘소 아래에 여흥민씨로서 처음 세거한 사헌부 집의 민충원의 묘비가 있고,

                 민환의 효자 정문이 도룡골에, 효행과 유덕을 닦은 민씨삼세칠효 정문과 효행 삼 형제인 민

                 진세의 묘가 부엉골에 있다.

 

9. 인물 : 여흥민씨의 세거지 답게 많은 인물이 있다. 대략 정리해 보면 도룡골에 처음 자리 잡은 민충원

              의 아버지 민심. 문장에 뛰어난 민수. 좌찬성에 오르고 위사공신 2등에 오른 민제인. 여흥민씨

              운촌공파를 파생시킨 민여검, 효행과 청렴했던 민진강, 북벌계획에 참여했고 예학에 조예가

              깊었던 이유태, 근래 들어 교육자이며 서예가인 민태식 등 이 있다.

 

10. 현재 : 대전엑스포과학공원. 과학문화센터. 우체국. 파출소. 소방서. 대덕초, 고등학교. 한국표준과

                학연구소등 이 있으며 앞으로도 미 개발지역이 많이 남아 발전을 거듭할 것이다.

 

 

2006년 도룡동 위성사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