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군 이겨라!
백군 이겨라!
♬우리 편아 잘해라, 저쪽 편도 잘해라,
우리들은 다 같은 금성학교 어린이.♪
오십여 년 전 목청껏 외치던 응원가,
운동장에 열기가 남아있는 9월부터 연습한 곤봉체조,
가을 운동회 전날 밤, 하늘을 수없이 올려다보며
반짝이는 별을 확인하고 잠자리에 눕는다.
가을 운동회,
높고 청명한 가을 하늘에 만국기가 줄지어 펄럭이는 운동장 앞 교단(校壇) 양옆에는
천막 텐트가 나란히 쳐져 있고, 운동장에는 하얀 석회가루 줄이 정갈하게 그어져 있다.
언제 왔는지 6학년 형들은 뜀틀을 가져다 놓고, 긴 장대에 청색, 백색으로 만든 큰 박도 준비하고,
어떤 형들은 내 키만 한 공을 굴려서 놓는다. 그런가 하면 굵은 밧줄 다발을 넷이서 힘겹게 끌고 오는 형들도 있다. 또 학교 앞 식당 주인은 운동장 끝에서 국밥 끓일 커다란 가마솥 준비가 한창이다.
이어서 모자까지 쓰신 교장 선생님의 훈화와 면장. 지서장. 우체국장. 농협 조합장님 소개가 끝나면서
뛰고, 달리고, 던지는 가을 운동회가 시작된다.
1~2학년 동생들이 펼치는 재롱잔치는 꼭두각시 춤으로 귀여움을 독차지했고,
몇 날 며칠을 배운 우리는 곤봉체조를 보란 듯이 했다. 그리고 5~6학년 누나들은 한복을 입고
부채춤을 공작이 날갯짓하듯이 하고, 형들은 텀블링과 기마전을 어찌나 민첩하고 씩씩하게 하는지
용감한 군인 아저씨 같았다.
가을 운동회 유일한 개인 종목은 빨리 달리기이다.
“땅”하고 출발 신호에 6명씩 고무신을 신고 뛰다가 벗겨져 뒤돌아서 고무신을 주어신고 뛰는
친구들이 있는가 하면, 들고 뛰거나 아예 고무신을 벗고 뛰면 반대편에서 선생님들은 1. 2. 3등
도장을 팔등에 찍어주고, 우리들은 공책과 연필, 지우개를 상품으로 받고 의기양양하게 퇴장한다.
가을 운동회에 제일 즐거운 점심 식사,
오재미로 터트린 박 속에서 ‘점심시간’이라는 글자가 운동회에서 제일 즐거운 점심시간을 알린다.
친구들이 아닌 마을 중심, 가족끼리 그늘을 찾아 맛난 점심을 먹을 때쯤에는
어떻게 알았는지 운동장 옆에는 달콤한 엿장수를 비롯하여 오색 풍선장수. 나팔장수. 시원한 주스 장수
그리고 크고 작은 장난감을 파는 장수까지 우리들의 눈과 귀와 입을 즐겁게 만들 었다.
점심을 먹거 나면 바쁜 농번기에 참석하신 남녀노소가 운동장 가운데 길게 늘어트린 동아 밧줄을 움켜쥐고 응원에 맞춰서 당기는 마을 대항 줄다리기, 또 마을 대표 청년들이 벌이는 계주는 우리보다 어른들이 더 즐거워하는 마을 잔치다.
모교 총 동문 화합 한마당 체육대회,
우리 23회 친구들은 매년 혼성계주에서 예선 탈락하는 터라 삼 년 전 제일 건장한 친구를
적극적으로 추천하였다.
‘어라! 저 친구가 왜 뒤뚱거리지....’
지난해에는 내가 작심하고 기수 대표 6번 주자로 뛰었다.
하지만 마음과는 달리 제자리 뛰기를 하고 있었다.
마음은 제일 앞인데 몸은 두 번째이고 또 발은 삼 등이 아닌가....
맞구나!
가을 운동회 한 지 오십 년이 지났다는 것을 그쯤에 알았다.
꼭두각시 춤을 추던 동생들과 곤봉체조 하던 친구들, 그리고 부채춤 추던 누나들이나
기마전 하던 형들은 이제 환갑을 기다리고, 넘어가고 이미 지난 오늘,
희끗희끗한 머리카락을 휘날리며 주름진 얼굴로 오십여 년 전 흙먼지 일으키던
그 운동장에서 추억의 운동회를 회상해 본다.
2018. 10. 5
아름드리 경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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