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빵, 빵~"
추석을 며칠 앞둔 9월 어느 일요일.
이른 아침부터 어머니는 주섬주섬 보퉁이에 이것저것 싸신다.
'아! 오늘 엄마가 유성장에 가시나 보다.'
하는 생각이 스치면서,
'나도 가야지' 마음먹고 어머니 눈치를 살피며 방으로 들어가
별스럽지 않은 옷으로 갈아입었다.
높고도 긴 남작골 고개,
옆집 아줌마와 함께 고갯마루를 오를 즈음에
힘겹게 올라오는 도락꾸 한 대를 세우니 태워주신다.
내리막으로 내달리니 바로 아스팔트 도로 앞에서
서울서부터 직행으로 내려오는 급행버스가 비키라고 '빵, 빵~' 거린다.
초등학교 시절,
몇 번은 옆으로 지나쳤을 유성시장이지만
시장 안에는 처음 보는 풍광이다.
모두가 신기한 풍물에 어머니 치맛자락을 놓치다 잡고, 잡다 보면 놓치고
이러는 사이, 수북이 쌓여있는 싸전에서부터 냄비, 바가지가 가득한 그릇 가게.
조기가 소금에 덮여있는 생선점을 지나 고리뗑(코르덴) 바지가 길게 걸려있는 옷 가게도 지나니,
고소한 향기를 내뿜는 기름집에서 어머니는 보퉁이를 풀으신다.
이내 주인과 무어라 무어라 하시지만
나는 고소한 향기보다 아침 일찍 먹고 한 고개를 걸어온 허기가 밀려왔다.
알았는지 몰랐는지 어머니는 유리창문이 달려있는 허름한 중국식당으로 갔다.
누가 중국집을 허름하다고 했나!
처음 맛보는 짜장면, 내 얼굴보다 큰 그릇에 담긴 한 그릇을 뚝딱,
단숨에 비워버렸다.
이제 시장 구경을 안 해도 걸어온 노고는 없을 성싶었다.
하지만 어머니 손에 이끌려 다다른 곳이
냇가에 천막을 쳐 놓고 스피가가 울려 퍼지는 서커스 장터였다.
꼼짝 말고 여기서 기다리라는 말에 나는 넋을 놓고 숨죽이며
처음 보는 서커스를 만끽한다.
서커스 단원중 한 명, 어쩜 저 누나는 얼굴도 이쁘고,
공중 그네도 잘 타고, 거꾸로 접시도 잘 돌릴까?
무엇보다 웃는 미소에 푹 빠질 즈음에 어머니가 오셨다.
가기 싫은 손목을 뿌리치지 못하고 집으로 돌아왔다.
새로 산 옷을 입고 싶은 설렘보다
그네 타던 서커스 누나의 애련으로 며칠을 가슴앓이를 하며
조금은 성숙해져 갔다.
2018. 9. 17
아름드리 경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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