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교 저학년 시절,
드넓은 황금 들판과 다랑논 밭까지 추수가 끝나고,
텃밭에 무 배추 수확해서 김장하고 나면
기나긴 농한기에 들어간다.
그때쯤 고향 들판은 황량하게 변해 있지만,
집에는 지난여름, 가을 수확한 농작물이 토광, 통괄이에 가득하고
광에는 자루. 소쿠리. 단지마다 가득하게 담겨 있다.
농번기에 찾지 않았던 황아장수들이
이 무렵 한가한 고향에 찾기 시작한다.
여자들에게 소용(所用)되는 여러 가지 물건을 파는 방물장수,
옷가지나 피륙을 보자기에 싸서 다니는 보따리 장사,
항아리 몇 개를 아슬아슬하게 서커스 묘기처럼 지게에 지고 다니는 단지 장수와
생선을 나무 상자에 서너 쾌를 지고 다니는 생선 장수,
그리고 함석 양동이에 간 천엽에 선지를 한가득 머리에 이고 다니는
선지 장사 아주머니를 어머니는 반갑게 맞이하신다.
작년 이맘때 맛을 보았으니 나 또한 그 아주머니가 반갑고 고마웠다.
큰 바가지로 두 바가지쯤 되어 보이는 선지를
부뚜막 제일 작은 양은 솥에 부어 놓고,
맛있게 자라고 있는 콩나물과 꾸들꾸들 마르고 있는 배추 우거지,
마른 토란대를 넣고 부지런히 불을 지피신다.
다 익어갈 무렵 나는 벌써 서너 번은 들락거렸지만
아버지는 연신 헛기침만 하고 계신다.
많지 않은 다섯 식구,
한 상에 둘러앉아 검붉은 선짓덩이가 담겨있는 선짓국을
진수성찬인 양 마음 가득, 몸 가득 추워지는 초겨울 저녁을 즐기면서
그해 겨울을 그렇게 시작됐다.
2017. 12. 21
아름드리 경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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