故鄕이야기

느러리 팽나무

아름드리 블로그 2014. 11. 10. 11:44

 

내 고향, 충청남도 대덕군 탄동면 자운리.

느러리, 윗뜸 마을 남쪽, 야트마한 언덕에 팽나무가 있었다.

나무의 수령이 250여년 쯤 되고, 나무의 높이는 20m에 둘레는 4m이고, 그늘의 둘레는 60m쯤 되었다.

 

 

일반적으로 팽나무는 느티나무. 은행나무와 함께 우리나라에 3대 당산나무로 일컬어지며, 서양에서는 슈거 베리(sugar berry)라 부르고, 한자명은 박수(朴樹), 박수(樸樹), 박유(樸楡)등으로 부르며 느릅나뭇과에 속한다. 열매가 연두색으로 열렸다가 10월경 등황색(橙黃色)으로 익으면서 단단해지는데, 그 팽나무 열매로 실탄으로 삼아 대나무로 만든 팽총으로 쏘면 " 팽 - " 소리가 나서 "팽나무"라는 이름이 붙여졌다는 설도 있다.

 

느러리 팽나무에 얽힌 전설을 소개하면,

옛날 옛적 어느 시절에 느러리 마을에 같은 해에 태어난 남자아이와 여자아이가 살고 있었다. 남자아이는 마음이 착하고 용모가 준수한 총각으로 자랐고, 여자아이는 아름다운 미모에 참한 처녀가 되어 서로 사모하게 되었다. 그러던 중 나라에 변란이 일어나자 총각은 전쟁터에 나갔고, 처녀는 느러리 마을 남쪽 언덕에 올라가 그 총각이 무사히 돌아오기만을 빌며 기다렸다.

그러기를 몇 달, 하늘도 무심하게 그렇게 기다리던 총각이 전사했다는 불행한 소식을 들은 낭자는 식음을 전폐하고, 총각을 기다리던 언덕에 올라가 몇 날 며칠을 기다리다 죽고 말았다.

낭자의 부모는 딸의 뜻을 기리기 위해 총각을 기다리던 언덕에 묻어 주었다.

그 후 전쟁터에서 죽은 줄 알았던 총각이 살아서 돌아왔다. 그런데 자기가 죽은 줄 알고 낭자가 따라 죽었다는 사실을 안 총각은 "나를 기다리다 죽은 낭자를 혼자 보낼 수 없다" 하여 낭자가 자기를 기다리다 죽은 언덕에서 죽고 말았다.

마을 사람들은 처녀와 총각의 못다 이룬 아름다운 사랑을 안타까워하면서, 총각도 느러리 마을 남쪽 언덕에 함께 묻어주었다.

이듬해 봄,

처녀와 총각의 무덤가에 어린나무 한 그루가 돋아났다.

마을 사람들은 처녀와 총각의 환생이라 생각하고 정성껏 키웠고, 그 정성으로 나무는 하루가 다르게 자랐다.

그 후 마을에서는 느러리 마을의 수호수(守護樹)라 여기고 팽나무 앞에서 일 년에 두 번, 정월 대보름날과 백중날에는 금줄을 느리고 제를 지냈다. 또 언제부터인지 혼기(婚期)에 찬 처녀들은 팽나무가 있는 그 언덕에 올라가지 않는 불문율(不文律)이 생겼다.

하지만 남자아이들은 사시사철 팽나무에 오르내리며 놀았으며, 더위에 지친 어른들은 시원한 휴식처로 팽나무가 있는 언덕을 찾아 담소의 장소로 이어졌다. 

팽나무 전설로 인하여 250여 년간 평화로운 마을로 인근마을에서 부러움을 샀다. 

 

  지금은 대전광역시 보호수로 지정되어 자운대의 수많은 나무들을 거느린 체 군 장병의 휴식처로 사랑받고 있다.

 

2014. 11. 10

아름드리 경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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