宗事이야기

題 章敬公諡下

아름드리 블로그 2009. 10. 14. 13:38

  삼가 우리 柳氏의 歷代舊譜와 諸家文獻의 기록을 살펴 볼진대 공의 諡號가 모두 章敬으로 기록되어 그 후 수백년 동안 아무 異論이 없었다. 그런데 隆熙(朝鮮 純宗) 후 甲子(一九二四)년 여름에 큰 비에 산이 무너짐으로 인하여 공의 誌石이 세상에 드러났던 바, 지석 가운데 공의 시호가 章景으로 쓰여 있었다. 이를 본 많은 분들이 "증거하는데 지석 보다 앞설 것이 없다."하여 丙寅(一九二六)년 修譜시에 마침내 敬字를 버리고 景字를 취하여 改書하였다.

  아아! 宗中의 前修(先賢), 곧 예전 훌륭한 어른들이 해 놓은 일을 마땅히 힘써 따라야 하겠지만 그러나 修譜는 古今을 논할 것 없이 宗中 전체의 사업으로 의심이 있으면 묻는 것이 세상의 바른 도리인바 이미 그 의심이 있는데도 어찌 입을 다물고 조용히 그만 둘 일이겠는가?

  대개 지석이 사실을 증거하는데 진실로 그보다 앞설 것이 없지만 그러나 지석 또한 사람이 만든 것인데 누가 그 지석의 글씨는 착오가 없다고 보장하겠는가? 더욱이 改諡한 사실이 있었는지도 모르면서 육백여년 대대로 전해온 시호를 어찌 갑자기 고칠 수 있겠는가? 또 하물녀 우리 역대 문헌과 外人諸家의 기록이 이미 章敬으로 쓰여진 것이 한 둘이 아니고, 더군다나 공의 重孫(曾孫) 良度公 潁께서 지은 永樂譜序와 九月山別曲에도 모두 예전 시호로 쓰여 있어 그 敬字와 景字의 많고 적은 비율을 논할진대 敬은 아홉이 되고 景은 하나라 할 수 있다. 孟子께서 "하나로써 여덞을 굴복시킴은 오히려 不可하다" 하였거늘, 지금 우리 류씨의 일은 하나로써 아홉을 이기는 것과 가까움으로 그 取捨를 스스로 분별할 수 있을 것인데 丙寅年 예전 어른들의 取捨가 이와 다름이 있는지라, 이에 深思熟考의 警戒를 들어 뒷날 古史에 밝은 君子의 正論을 기다린다.

 

丙戌重陽節                       

二十三孫淙鉉謹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