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말에 "아까운 사람이 단명하다."고 했던가?
꽃도 아름다우면 빨리 지는가?
꽃들은 대부분 여인을 연상케 한다. 그중에서도 목련꽃은 엄한 가문의 규방규수(閨房閨秀)에 비유될 만큼 지성이 느껴지는 지조의 꽃 같다.
꽃만큼 세상을 아름다움으로 변화시키는 신비의 창조가 또 있을까? 특히 유백색 목련꽃은 색상도 단아하지만, 향기도 고매하다. 자태가 요염하지 않아 만화방창(萬化方暢) 호시절에 덩달아 피어나는 아류(亞流)의 꽃들과 생태부터가 다르다.
꿀 한 방울 가슴에 품어 나비나 벌을 호객하는 매춘의 꽃이 아니다. 욕망 한자락에 매달려 비류한 존재이기를 단연코 거부하는 꽃이다. 모진세파에 한 번도 상처받지 않는 순결의 꽃이다. 비록 시거먼 표피, 누추한 나목에서 피어났지만 그윽한 자태가 법열(法悅)한 가닥을 머금었다. 그래서인가. '이루지 못한 사랑'으로 상징되는 꽃말의 사연도 유장하다. 유심히 살펴보면 하얀 꽃잎 속에는 깊은 애증의 한이라도 배어있는 듯하다.
난하지도 않고 요염하지도 않으면서 보통을 초월한 형이상학적 사유를 머금고 있다. 하늘을 우러러 하얗게 열어젖힌 꽃잎 마디엔 절절한 그리움이 무겁다. 소리는 내지 않으나 울림이 그윽하고, 율동은 없으나 나불나불 내려앉는 생의 찰라가 애상(哀想)을 뿌린다. 향기도 색상도 모양도 두드러짐이 없기에, 그래서 더욱 돋보이는 꽃이다.
세상의 미련을 떨쳐버린 홀연한 화심 속에 단장(斷腸)의 각오라도 담았는가. 우수에 젖은 인고의 눈빛을 가졌다. 은근하면서도 속연함이 지그시 흐른다. 결단성과 강렬한 내심만 보인다. 후세에 남길 씨앗 한 톨 매달기조차도 거부하는 꽃이다. 누구는 허무의 꽃이라고 비유한다. 하지만 목련은 허무도 아니고, 무상도 아니다. 유한의 운명 속에서 무한을 고집하는 인간의 사유(思惟)는 더더욱 아니다. 시류(時流)에 휩쓸리지 않는 고결한 꽃이다.
욕망에 유착돼 절망하거나 고민하지도 않는다. 먼 산 능선에 얼룩진 잔설들이 녹아내리는 소리이듯, 나목의 줄기에 수액이 흘러 도는 소리이듯, 또 양지 편에 가물대는 아지랑이 숨소리이듯, 봄빛 나긋나긋 운을 뗄 때면 뽀송한 솜털 표피 조용히 열고 나와 세상 한 번 훌쩍 둘러보곤 바로 떨어지는 목련꽃의 결연한 의지---. 목련은 나무에서 피워내는 봄꽃 중에서 매화 다음이다.
목련꽃은 서둘러 피었다 바쁘게 지는 단명의 꽃이다. 섭생하는 진드기나 벌 한 마리도 범접하지 않지만, 교활하거나 오만하지도 않다. 창백하게 사무쳐 있는 순수의 사념뿐이다. 수심 어린 여인의 얼굴이 스칠 뿐이다. 슬픔 같은 순결이 베었고, 눈물 같은 애린의 감성이 흐른다.
믿음과 불신 사이에서 발연하는 아리한 번뇌 모두 화심속에 쓸어안은 꽃이다. 어떤 깨달음 하나가 가늘게 물살지어 밀려오는 인연의 꽃이다. 나목의 가녀린 수액에 의지해 엄동설한을 앓아온 인고의 꽃이다. 잠시뿐인 꽃 한 송이 피워내기 위해 삭이고 녹여낸 고통인들 얼마이었을까. 잎이야 피든 말든 주저치 않고 선뜻 꽃부터 피워낸 치열함---. 보기에는 부두러운 유백색이나 내심은 가시 돋친 장미꽃보다 강한 꽃이다.
2017. 3. 23
아름드리 경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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