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 탄동 8개리를 병풍처럼 감싸고 있는 금병산. . . ,
고려 말까지 금평산(錦平山)이라 부르던 이 산을 이태조(李太祖)에 의해 고쳐 부른 금병산. . . ,
계룡산 신도안을 일국(日局)이라 하고, 금병산을 월국(月局)으로 부르던 산 중턱에 옹달샘이 발원하여 숯골내를 이루고 느러리 앞에 다다를 때쯤에 둑을 만난다. 이 신작로(新作路)가 느러리 동(垌)둑이며 1959년에 당시 국방위원장(국회의원)이던 박병배(朴炳培 1917~2001) 의원의 주선으로 공병대가 만들었다고 한다.
동둑을 사이에 두고 오른쪽에는 숯골내가 흐르고 왼쪽으로는 느러리 앞들이 펼쳐졌다. 동둑의 양옆에는 행인을 내려다보는 아름드리 버드나무 고목이 띄엄띄엄 줄지어져 약간은 구불구불한 흙길이 약 1km 쯤 이어졌다.
그리고 느러리 마을 앞 논 가운데 커다란 샘이 있었는데, 그 샘에서 솟는 물은 사계절 마을 사람들에게 생명수와 같아서 봄에는 논농사에 물 먹이가 되어주고, 무더운 여름에는 시원한 오아시스가 되었으며, 가을에는 동식물이 살찌우는 영양소가 되었고, 추운 겨울에는 따뜻한 샘물로 마을 어머니들의 빨래터로, 또 개구쟁이 아이들의 얼음 썰매장을 만들어 주었으니, 마을 사람들에게 사랑을 듬뿍 받았다. 그 사랑을 받고 넘친 물은 동둑 안쪽 수로를 타고 1km 흘러 물레방아 간 터에서 1.2m의 낙차(落差)로 떨어져 동안들을 적시고 수천이 들로 흘렀다.
그 동둑 마을 쪽 동안들에는 어른들의 희로애락의 일터였지만,
냇가 쪽에는 개구쟁이들의 놀이터이었으니 ,
봄철에는 버들피리의 소재가 많아 우리를 즐겁게 했고,
여름철에는 보(洑) 밑에서 물장구치기 놀이터로 손색이 없었으며,
가을철에는 물고기잡이의 넉넉함을 주었고,
추운 겨울에는 얼음지치기 장소를 만들어 주었으니,
또 하나의 동무였던 숯골내는 흘러흘러 탄동천의 이름으로 선창말에서 갑천과 만난다.
40여 년이 지난 지금은 정겹던 동둑과 실개천의 자취가 사라지고, 군사용 포장도로와 일자형 하천으로 변모하였고, 들이나 마을이 있던 자리는 울타리가 둘러진 군부대로 바뀌고, 물레방아간이 있던 터는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하지만 40년 전 귀중한 한 컷의 사진이 있어 그 시절을 회상하며 느러리 동둑을 정리 한다.
2009. 7. 15
아름드리 경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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