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혼각지(招魂閣址)는 충남도 기념물 제18호로 지정돼 있는 지방문화재다. 국립공원 계룡산 동쪽자락 동학사 바로 곁에 있는 초혼각지는 세조에 의해 왕위를 찬탈당한 단종의 복위를 모의하다 발각돼 참형을 당한 수많은 충혼을 기리기 위해 김시습(金時習)이 만든 제단이 있던 자리로, 숙모전, 삼은각, 동계사가 나란히 자리잡고 있다.

숙모전은 단종과 정순왕후를 위한 정전과 동·서무에는 사육신 등 95위의 위패가 봉안돼 있다. 삼은각은 고려조의 충신이며 유학자인 포은, 목은, 야은의 위패를 모신 곳이고, 신라시대 박제상의 항일 충혼과 고려 개국공신 류차달(柳車達)의 충절을 기리는 곳이 바로 동계사다. 이곳은 신라, 고려, 조선조에 이르는 세 왕조의 충의절신을 초혼하여 한자리에 모신 곳으로, 우리나라 사우 가운데 가장 오랜 역사와 가장 많은 위패가 배향돼 있는 민족혼의 성역이다.

초혼각지와 이들 동학삼사(東鶴三祠)가 단순한 사우(祠宇)가 아니라는 점을 쉽게 알 수 있다. 이렇듯 유서 깊은 민족사적 유적이 한낱 지방문화재 차원에서 홀대받고 있는 까닭은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 혹시라도 선인들의 거룩한 절의정신이 평가절하된 것 같아 안타깝다.

초혼각지는 국가 문화재인 사적지로 승격, 그 위상에 어울리게 대접받고, 정부 차원에서 보호돼야 마땅하다. 사적은 기념물 중 유사 이전의 유적, 제사, 신앙, 분묘, 비 등과 같은 문화유산 가운데 중요한 가치를 지닌 것을 대상으로 지정된다. 우리나라에는 작년 말 현재 439개 사적지가 있고, 충남에는 사적 제4호인 부여 성흥산성을 필두로 42개 사적을 보유하고 있다. 2001년 이후 사적으로 지정된 문화재만 해도 부여 화지산 일원 유적(제425호)을 비롯 충남도 기념물 제33호로 지정됐던 왕흥사지가 사적(제427호)으로 승격되는 등 모두 8개나 된다. 불과 3년 사이 충남에서 보유하고 있는 전체 사적의 20%에 육박하는 문화재가 사적으로 지정되는 경사가 났으나, 초혼각지는 그런 기회를 얻지 못했다. 전국적으로 현충사, 종묘는 물론 칠백의총, 홍주의사총 등 사묘(祠廟)와 제단 21개소, 능원(陵園) 70개소가 국가문화재로 지정받아 보호되고 있는데도 유독  초혼각지만이 사적 반열에서 빠져 있다.   

초혼각지에 있는 동학삼사의 수호 및 봉향 책임을 지고 있는 숙모회의 방심도 문제지만, 해당 지방자치단체 및 문화재 당국의 무관심도 비판받아 마땅하다. 초혼각지와 같은 유서 깊은 유적은 그 존재만으로도 사적지로 승격되고도 남음이 있다. 똑같이 충남도 기념물이었던 왕흥사지는 사적으로 승격됐는데도 초혼각지만이 지방 기념물로 방치되고 있는 것은 무엇으로도 변명의 여지가 없다. 이곳에 봉안된 103위의 충혼과 의백(義魄)은 한민족이 갈고 닦은 충의정신과 민족정기의 상징적 존재다. 초혼각지야말로 우리가 소중하게 간직하여 자손만대에 물려줘야 할 우리 민족의 빛나는 유산인 것이다.  

초혼각지가 사적 승격이 되지 않은 데 따른 문제점은 우리나라에서 오직 하나밖에 없는 역사적 기념물이 그에 상응하게 위상 정립이 돼 있지 않다는 데 있다. 전국의 어떤 사적과 비교해 봐도 초혼각지가 빠져 있어야 할 까닭은 찾을 수 없기 때문이다. 여기에다 숙모회의 열악한 재정형편으로는 이곳에 있는 전(殿), 각(閣), 사(祠)를 제대로 보존 관리할 수 있는 여력이 없다고 한다. 숙모전 본전의 경우 최근 지자체의 지원으로 가까스로 보수가 돼 있는 형편이지만, 숙모제와 동·서무의 훼손이 날로 심해지고 있는 데 따른 대책은 전무한 실정이다. 동·서무의 추녀가 내려앉고 기둥뿌리가 심하게 부식돼 가고 있는데다 마루청까지 출렁거리고 있다는 얘기도 들린다. 초혼각지가 소홀히 취급되고 있는 것은 위대한 선인들을 받드는 후손의 무례로밖에 비쳐지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