宗事이야기

[문화류씨보감]선전관에 발탁된 한명(漢明)

아름드리 블로그 2011. 3. 11. 13:50

 

  하정공파, 남제공(南齊公)종중(정읍.달천) 입향조는 남제공의 손자 의남(義男)이며, 공의 손자 23世 한명(漢明1649~1707)은 도사공 무(楙)의 3자로 어려서 정읍달천에 살면서 택당 이식(澤堂 李植). 부제학 신천익(副提學 申天翊). 장무공 신호(莊武公 申浩)등을 배출한 비내서당<아버지 외가인 이감사댁 서당>에 다니면서 공부 하였는데 중간지점에 달천 냈물이 있어 밤 늦게까지 글을 읽고 돌아오느라면 반드시 도깨비들이 주고 받는 말이

"자네 어딜가나?"

"나는 류병사(柳兵使)모시고 가네"

"그러면 통(統)은 어떤가?"

"통은 아깝게 쉬었네"

하는 것이었다. 이말을 듣고 장래 병사(兵使)가 될 것을 집작했지만 "통"이 무슨 뜻인 줄 몰랐다가 돌아가시는 날 통제사교지(統制使敎旨)가 내려와서야 비로소 그 뜻을 알게 되었다 한다.

  하루는 장년들이 공의 담력을 시험해보려고 음습(陰濕)한 한밤중에 상여집보에 걸린 물건을 가져오게 한다음 미리 숨어 있다가 열심히 꺼내는 공의 상투를 잡아 놀라게 하였으나 태연히 "이것 놓지 못할까"하고 호령하더라는 것이다. 이같은 소문이 나라에서 알게 되어 숙종(肅宗)은 무과도 거치지 않은 공을 선전관(宣傳官)으로 발탁하여 어의(御意)에 따라 무관으로 출새하게 되었다.

  공이 제주목사  임기를 마치고 떠나는 날 백성들이 공의 선정(善政)을 감복하여 전별기념으로 몰래 <인모석>을 넣어 주었는데  이를 모르고 배에 올랐던 공은 바다 중간에 이르자 애견(愛犬)이 갑자기 그 전별기념물을 보고 요란하게 짖으므로 열어본즉 나라에서 금하고 있는 어용물(御用物)이므로 이를 해중에 버리고 더욱 각심(覺心)하여 선정하므로 가는 곳마다 생사우(生祠宇)가 세워졌다 한다. 이는 모두가 애견의 도움이라 생각하여 공의 묘 옆에 묻어주고 지금까지 제사하니 사람들은 류병사 개무덤이라 불러온다.